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나로 Dec 21. 2023

무한한 자유

회사를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출처: Sul Romanzo Agenzia Letteraria

회사를 그만두고 여덟 달 동안,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소설을 썼다.

오전에 세 시간, 오후에 다섯 시간씩 시간을 정해놓고 쓰다가

나중에는 하루치 쓸 분량을 정해놓고 썼다.

장편 두 개, 중편 한 개, 단편 두 개 분량의 소설이 나왔다.


처음 소설을 쓸 때는 창작욕구를 배설하듯이 써 내려갔다.

작법을 배우고, 시장에 대해 알아나가며

웹소설은 장르가 고착화돼 있다는 점, 출판소설은 기성작가와 원고계약을 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

대부분의 공모전은 장르를 가려 받는다는 점을 알게 됐다.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은 순수문학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돈 버는 일은 따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글 쓰는 일로 돈을 벌어야겠다고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저렴했다.

그 돈 받고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

또다시 남의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경력도 안 되는 일로 적은 보수를 받고 싶지 않았다.

내가 잘하는 기술로 돈을 벌어서, 배우고, 새롭게 배운 기술로 나의 지경을 넓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생각보다 대기만성형은 아니었던 것 같다.


또 알게 된 것은, 나는 끓고 식는 것이 너무 분명한 사람이라서

하고 싶은 일을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는 환경 세팅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일을 언제든지 시작하고, 언제든지 그만두고, 내 능력에 따라 보수를 받는 자유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매주 두 달 동안 마음건강 상담을 받았다.

나는 상담사님께 돈을 많이 버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상담사님은 왜 그래야 하냐고 물었고, 나는 돈이 많아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지금은 상담 후로 일곱 달 정도 지났는데 그때 상상만 했던 일들을 겪고 있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회사에서 하던 일을 들고 나와 사업자등록을 해서 자유직으로 살아가고 있다.

회사를 다닐 때보다 서너 배의 월매출을 올리고 있고
(여기에는 고용 불안에 대한 일시적 보상이 포함돼 있다고 생각한다),

남는 시간에 더 일해서 돈을 더 벌 수 있지만 그러지 않고 있다.


남는 시간이 없는 갓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살아왔는데

남는 시간이 있으면 그냥 쉬고, 창작활동을 하는 게 나에게 더 맞는 생활임을 느낀다.


지속가능한 행복한 일상을 사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다.

이렇게 단순한 목표조차도 쉬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다.

쉬지 않고 갓생을 살 때에는 이 정도 연차에는 어느 정도 연봉을 받아야 하는지, 어느 정도 레벨의 회사를 다녀야 하는지 같은 것들을 고민했었다.

내 일상에서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들을 옆에 두기만 하면 되는데, 그런 부질없는 것들을 고민했었던 과거의 내가 불쌍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나는 천성이 정신사나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자꾸 뭘 한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그래야만 여유가 생겨서 내 삶을 들여다볼 준비가 되는 것 같다.




침착맨이 설명하는 순수예술의 정의에 공감한다



작가의 이전글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