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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양섭 Nov 01. 2024

빨간 등대

  등대는 바다만 비추지 않는다. 풍파는 땅에서도, 여기서도 일어나니까. 나는 다시 등대를 봐야 한다. 318호실 환자들은 병상에 묶인 모습 그대로 정물 같다. 두 얼굴을 가진 간병인만 가라앉은 공기를 밟으며 떠다닌다. 오늘도 나는 기도의 응답이 오길 기도하고, 시간은 멈춘 듯이 흐른다. 철컥철컥, 병상 난간을 흔들어 소리를 내고 손을 들어 창문을 가리킨다. 간병인과 눈이 마주치고도 손을 든 채 한참 눈을 슴벅인다.

  “하, 이 할매 고집 참… 비 온께네, 쪼매마 열어 디리께, 참으이소이?”

  오늘은 비 냄새가 물큰해 바다 냄새는 미미하다. 여기서는 볼 수 없지만, 8층 휴게실에서는 전면 유리창으로 선창과 방파제와 빨간 등대와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져 보인다. 같은 건물 속 다른 세계이다. 하지만 나는 병상에서 내려설 수도 없으니 가볼 수가 없다. 멀쩡히 걸어서 병원에 들어와 이제는 사육당하는 산 송장이 되어버렸다.

  “드, 드응대, 가…” 말 배우는 아기처럼 입술을 달싹이며 소리내는 연습을 한다.     


  서울서 아들 차에 실려 딸이 사는 남쪽으로 옮겨졌다. 불쑥 들이닥친 딸이 소릴 질러대는 통에 억지로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나 때문에 손녀가 팔을 데었고, 아들이 이혼하게 생겼다는 말에 기가 꽉 찼다. 대체 왜 내 탓인지 몰라 속만 터졌다. 외려 내가 얼마나 며느리 눈치 보며 살았는데…. 툭하면 소리 지르는 며느리와 아들이 싸울 때도 늘 며느리 편을 들었는데…. 이게 다 남편이 없어 그렇구나 싶었다.

  “병원 원장이 우리 식당 단골이야. 엄마, 실어증 고쳐준대. 기억도 돌아올 거래…. 엄마 좋아하는 책 보고 글 쓰고, 푹 쉬면서 치료 잘 받아, 응? 내가 자주 올게….”

  옆에 앉은 딸은 퉁맞은 아이 달래듯 종알거렸다. 말 안 한다고 실어증이라 그러고, 기억 좀 못 한다고 치매라니 더 말하기 싫었다. 어차피 말 붙일 남편이 없는 집에 살기도 싫었지만, 내 집에서 쫓겨나는 꼴이라 어기댔을 뿐이었다. 아들 뒤통수를 보며 입술을 질근대다가 멍청하게 잠이 들어버렸다. 깨어보니 딴 나라 같은 낯선 도시였다.

  도착한 곳은 갯바람과 비린내가 물씬한 어시장이었다. 대뜸 남편과 왔던 곳인가 싶어 휘둘러보다가, “엄마! 우리, 회 먹고 가자.” 말하는 딸의 표정을 살피려 고개를 드니 키는 제 아빠 닮아 콧구멍만 보였다. 등대가 보이는 횟집으로 들어섰다. 그득 차려져 휘둥그레졌다가, 셋이 하는 마지막 식사일 것만 같아 목이 꺽꺽 막혔다. 남편이 좋아했던 회를 깨지락거리다 말았다. 밖에 나오니 펄럭이는 천막 위로 하늘도 우중충했다. 아들 옷이 얇아 보여 내 목도리를 풀어 목에 감아주려 하자 한사코 마다했다.

  어시장 건너편에 키 큰 나무가 반쯤 가린 보은요양병원 간판이 보였다. 주차장에 내려 병원을 올려다보니 부르르 몸이 떨렸다. 홱 돌아서서 어디로든 내빼고 싶었지만, 고개 숙인 채 어정쩡히 내 팔을 잡은 아들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오줌이 마려워 눈살이 찌푸려졌다. 휘, 회오리바람이 길가에 뒹구는 가랑잎을 띄우고 내 등을 밀었다.

  딸이 입원 절차를 밟는 동안, 8층 휴게실에 앉았으려니 꼭 먼 나라로 가다가 중간에 잘못 내린 여행객처럼 얼떨떨했다. 창밖 멀리 빨간 등대 너머 바다와 하늘은 온통 회색이었다. 불현듯, 남편 말이 떠올랐다. “봐, 구름 아래가 흐린 거지, 하늘은 저리 맑잖아!” 결혼 기념으로 태국 여행을 가던 날 비가 왔는데, 비행기를 타고 오르니 하늘은 거짓말처럼 새파랬다. 남편은 때마다 나를 안심시켰고 늘 긍정적이었다. 쩝, 입맛을 다시고 남편 닮은 아들을 보니, 내 눈을 피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괜찮다고, 너희 내외가 화해하고 데리러 올 때까지 바다나 보며 기다리겠다고, 아들 어깨를 토닥이며 주억거렸다. 정교수가 되어 자랑스러운 아들이지만 얼굴 보기도 어려웠다.     


  603호실은 6인실이었다. 병상에서 바다가 보여 다행이었다. 굽어져 뻗어나간 방파제 끝에 우뚝 선 등대는 빨간 등산복을 입은 남편이 뒤처진 내게 손짓하던 모습 같았다. 밤중에 등대의 빛이 번뜩 병실을 훑고 가면, 남편의 눈길인 양 횟수를 세다가 잠들었다. 틈만 나면 수첩을 들고 8층 휴게실에 가서 바다와 배들을 바라보았다. 내 몸이 등대 앞의 부표처럼 둥실둥실 뜬 기분이었다. ‘당신은 등대, 나는 길 찾는 배/ 당신은 길, 나는 나그네…’ 수첩에 적다가 픽 웃고 덮었다. 남편이 부추겨 매달렸던 글쓰기도 남편을 잃고는 말과 함께 놓아버렸다. 의미 있던 것들의 의미가 부스러졌다.

  그날 아침, 창밖을 보다 헉, 숨이 멎었다. 붉은 수평선의 가운데, 주황빛 덩이에서 뿜어진 빛살이 물결에 튕기며 빛의 오라(aura)가 펼쳐졌다. 빨간 등대를 시작점으로 보석을 뿌린 듯 휘황한 길이 바다 끝까지 반짝였다. 웅웅웅 빛의 소리가 울렸다. 8층에 가서 보려고, 급히 싣던 슬리퍼가 뒤집히며 발목이 접질렸다. 좀 뻐근했는데, 의사가 달려오고 사진을 찍고 인대가 어쩌고 하더니 깁스를 해버렸다. 별수 없이 목발을 짚고 8층 휴게실에 다녔다.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왁자한 어시장과 방파제를 드나드는 어선과, 솟구쳤다 가라앉는 파도와 갈매기를 바라보면 몸과 마음이 차분해졌다.

  2주 지나면 풀어준다더니 자꾸 미루는 깁스를 확 부숴버리고 싶었다. 그때 하필 청소 중인 화장실에서 깁스한 발이 쭉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일어서려는데 찡, 통증이 솟구쳐 도로 앉았다. 병원에서는 또 큰일 난 듯이 엑스레이를 찍고, 복대로 가슴부터 허리까지 꽁꽁 처매버렸다. 더 환장하게도 척추압박골절이라 움직이면 안 된다며 3층 와상 병실로 옮겨버렸다. 발버둥을 치니 아예 묶었고, 병상 양쪽 난간을 철커덕 세우니 닭장이 되었다. 그때야 1번만 누르면 아들과 연결되던 휴대폰이 생각났지만, 언제 없어졌는지도 몰랐다. 중증 장애인 꼴로 딸이 오기만 울면서 기다렸다.

  6층이 천국이라면 3층은 지옥이다. 병상에 갇혀 연명하는 318호실 환자들은 6, 7년은 보통이고 12년째 장기수도 있다. 가족의 방문은 점점 뜸해져서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그러다 명절이나 생일에나 다녀간다고 한다. 밖에서 움직이는 사람은 무뎌지겠지만, 붙박인 환자는 그리움과 회한만 쌓이며 삶도 죽음도 아닌 시간을 견딘다. 남편은 삶과 죽음 사이에 공백이 길면 혼이 길을 잃는다며 연명 치료를 거부했었다.

  나는 걸을 수 있다고, 병실을 옮겨달라고, 화를 내고 애원하느라 악악대고 쪽지까지 써 줬지만, 내게 찍힌 낙인은 바뀌지 않았고 되레 망상증 진단이 더해졌다. 애간장을 태우고야 나타난 딸은 어이없게도 병원 편이었다. 나를 탓하며 좀 고분고분해지라고 나무랐다. 318호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가 내게도 번져왔다. 얼른 아들이 와주기만 기도할 때, 머릿속에 빨간 등대가 번득였다. 낮은 층에 갇혀 등대를 못 본 그들과, 등대와 불빛을 아는 나는 길이 달랐다. 기도할 때마다 빛기둥이 나를 비추었다.     


  비 그친 바깥이 거짓말처럼 환해진다. 커다래진 내 눈 앞을 가리는 사람에게 손사래를 치다가 아! 소리가 터진다. 글썽이는 아들이 허리 굽혀 빛기둥처럼 나를 안는다. 딸도 며느리도 보인다. 아들 얼굴을 만지며 눈을 맞춘다. “파, 팔 츠응, 가…” 안간힘으로 소리를 낸다. 눈이 동그래진 아들이 휠체어를 가져와 8층으로 데려간다. 구름 걷힌 바다는 눈이 부시고 가슴이 벅차 온다. 통통배가 방파제를 빠져나가고, 먼바다엔 큰 배가 떠간다. 마음은 새가 되어 날아가 뱃머리에 앉는데, 며느리가 과자를 주어 새끼 새처럼 받아 오물거린다. 헤벌쭉 웃어 보인 아들이 바다를 보며 중얼거린다. 

  “엄마, 제가 교환교수로 캐나다 간다고 했던 말 기억하세요? 식구들 같이 가게 됐어요…. 거기도 태평양 바닷가예요. 엄마, 저 바닷물은 바닷가 어디든 갈 수 있어요. 햇살처럼요. 그러니까 우리, 멀리 있지 않아요…. 늘 같이 있는 거예요. 엄마, 아셨죠? 2년 후에 다시 같이 살 거니까… 엄마가 아버지랑 약속했던 글 쓰고 계세요….”

  ‘그래, 알아! 그 눈부신 바닷길, 엄마가 봤어… 저기, 등대에서 바다 끝까지….’

  나는 그저 웃으며 끄덕인다. 아들은 내 수첩을 넘겨보며 입술을 깨물고 나를 본다.

  “엄마, 내일부터 재활치료실 가서 운동시킬 거래. 혼자 걷게 되면 병실도 옮겨준대. 이제 됐지? 봐! 원장님이 다 알아서 해준다니까… 우리 내일, 저 방파제에 가볼까?”

  입원하던 날처럼 딸이 알랑거린다. 빙싯 웃고 끄덕이며 손을 뻗어 등대를 가리킨다. ‘저기, 네 아빠가 있어…’ 문득 등대가 빨강 신호등처럼 보인다. 방파제를 철썩 때리고 쓰다듬는 물거품이 야속한 남편의 손사래 같다. 야속함마저 그리움으로 가슴을 적신다. 남편에게든 아들에게든 갈 수 있는 바닷길은 언제 파랑 신호로 바뀔까. 등대는 다만, 여기라고 비춰줄 뿐이다. 그 빛은 갇힌 기다림에 한 줄기 바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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