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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양섭 Nov 01. 2024

Putri island, the star!

- 자카르타 앞바다, 별처럼 빛나는 작은 섬

  안쫄 마리나 선착장에서 두 시간, 옥빛 물그림자 어리는 투명한 바다, 거기 오도카니 피어난 듯, 띄워놓은 듯 떠 있는 작은 섬 뿌뜨리. 너의 뿌리가 보일 만큼 맑고 잔잔한 바다는 밀물도 썰물도 없는데, 너는 바람에 나부끼듯 일렁이고 있더구나. 설레는 내 발이 닿자, 날 알아본 너의 떨림이 전해져 왔단다.      


  이방인은 네 이름의 의미는 모른다. 다만 별처럼 반짝이는 너의 오랜 기다림이 내게 닿았음을 안다. 내가 어릴 때 알았던 어린 왕자가 사막이 아니라 여길 왔었더라면, 바오밥나무 걱정은 하지 않고 장미 한 송이 곁에 두고 바다에 발 담그고 해넘이를 구경하였을 텐데, 여기를 찾지 못해 사막을 헤매었나 보다.     


  나는 찾아서 다행이구나. 먼 우주, 만 개의 별을 돌아 지구별 바다에 떠 있는 한 송이 꽃 같은 이 섬에 내렸으니, 긴 여정은 여길 오기 위함이었나 봐. 나는 어린 왕자의 별에 온 듯 금세 두 바퀴를 돌았어. 이방인이면서 대뜸 별의 주인이라도 된 양 햇살과 바람과 나뭇잎들이 포근히 감싸주는 걸 느꼈단다.      


  청색 옥색 연두색 여러 빛깔로 발치에 찰랑거리는 바다는, 아득히 먼 옛날에 내가 잠겨 있던 양수 같아서 저절로 젖어 들고 싶어졌어. 그저 가만히 안겨서 아무 짓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시간이, 아무 걸림 없는 자유에 몸을 맡길 공간이, 이렇게 홀연히 다시 주어지기도 하는구나. 누구나 원래 아기였단다.      


  뭍에서 아등바등 득시글대는 인간들은 모를, 태초의 순수를 닮은 때와 곳에 날 이끈 이는 누구일까. 여길 닮으려는 표정으로 맑게 웃는데 눈물이 어리는 까닭은 차마 설명할 수 없구나. 어린 왕자를 불러 친구 삼고 싶지만, 어른이 되어버린 내 생각으로는 간 곳을 찾을 수 없어. 어른은 점점 먹통이 된단다.      


  저, 저, 붉은 강 어찌 할거나. 어린 왕자가 제 별에서 의자를 당겨 몇 번이고 보던 해넘이랑 다르잖니! 멀어질수록 층층이 색이 다른 바다 너머, 또 그 너머엔 어느 별이 있길래 노랗고 붉은빛이 저리도 가라앉나. 다시 없을 하루를 데리고 그 별로 넘어가는 해는 제 몸을 살라 이글이글 글썽이는가, 외치는가!      


  밤이 왔지만, 도무지 밤이라 할 수 없는 백야 같구나. 새로 두 시, 우주의 정령들이 교감하는 시각. 나는 발가벗고 하얀 모래에 발자국을 남기며 춤추다가 하늘빛 어리는 바다로 들어간다. 내 몸피만큼 물속 모래를 파고 거기에 잠긴다. 자궁일까, 무덤일까, 너는 오래도록 나의 자국을 기억하리라 믿는단다.      


  물은 나를 띄우고 내 몸과 팔다리는 해초가 되어 일렁거린다. 흰 구름 떠 있는 하늘에 별들이 속삭인다. 금빛 가루로 부서지듯 내려와 바닷물에 어룽거리는 별의 말들을 눈으로 듣는다. 구름이 흘러간 자리 환히 나타난, 눈에 익은 오리온자리와 인사를 나누자, 곁의 별들이 갈채를 보낸다. 쏟아져 내린다.      


  저다지 한가로이 바다에 가지를 내린 나무 뒤에 달이 떠 있어 이리 환했구나. 구름 뒤에 숨어서도 노랗게 빛나는 반달. 내 몸을 쓰다듬는 감미로운 물속에서, 하늘을 살핀 나는 돌아누워 너를 살뜰히 껴안는다. 지구별 바다의 작은 별, 나는 거기 업혀 우주로 따라가고파 숨이 가쁘도록 너의 속살에 파고든다.      


  이름 모를 새가 노래하며 날아가고, 나뭇잎은 달빛 받아 살랑거리는데, 나는 물속에서 황홀한 연애를 한다. 달도 별도 이 밤의 정령도 나의 희열과 함께 정녕 이대로이고 싶다. 하지만 어쩌나, 잊었던 시간이 매정하게 나를 깨우네. 달은 구름 속으로 별은 제 갈 길로 흐르고 여명이 바다를 깨우며 밀려오네.      


  지금은 저기 뭍에 내가 자란 어른이 있어 돌아가야 해. 여기서 내가 아기였음을 기억해 줘. 너의 기억을 믿고 나는 다시 어린이가 될 거야. 그래서 어린 왕자를 찾아서 꼭 이 별에 데리고 올 거야. 깜짝 놀라서 자꾸 질문을 하겠지. 그땐 내가 시간을 모를 테니 뭐든 대답할 테지. 이 별은 내 별이었다고….     


  배에서 되돌아보는 내 눈이 젖는다. 여정은 언제나 짧고 만남은 아쉬움을 남기지만, 돌아가야 할 곳이 있어서 또 다른 약속을 할 수 있잖니. 너, 나, 바다, 나무와 바람, 다시 기다림이 되겠지만, 나의 별이여! 내 가슴에서 꿈에서 빛나리니, 순간은 영원이란다. 거기 그대로 있으라, 단 하나의 천국 뿌뜨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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