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눈 뜨고 꾸는 꿈 같기도 하다. 세상의 산과 강과 섬들이 제각기 모양과 운치가 다르듯, 모든 여행도 각각 그 나름의 의미와 재미가 색다르다. 거기에 그 여행에서만의 독특한 사연이 더해지면, 풍광의 향유에 더하는 감동과 경험은 추억이 되고 삶의 자양분이 된다. 여행의 맛 중에서 함께 가거나 만나게 되는 사람으로 인한 재미나 감동도 빼놓을 수 없는데, 어떤 여행은 함께하는 사람에 의해 성패가 좌우되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구경이나 탐방을 우선하는 여행의 본디 목적에 가려져 사연이 묻히는 경우도 많다. 여행은 비교의 대상은 아니지만, 개별여행과 달리 공동의 목적과 의미에 동참하는 단체여행은 소속감과 공감대의 형성으로 한층 다른 맛을 자아낸다.
국토순례는 말로만 들어도 애국적이고 가슴 뜨거운 여행이다. 올해의 국토순례는 인천의 역사가 어린 길을 걷고 백령도를 다녀오는 2박 3일 일정이었다. 몇 번 와보아 낯설지 않은 인천의 시장 골목과 자유공원과 차이나타운을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걸으니 새삼 의미가 다가오고 그 길이 다시 보였다. 오랜 시간 긴 길을 걷는 일행 중에 휠체어를 탄 회원이 있었다. 불편한 몸으로 의미 있는 여행을 함께하는 열정도 대단하고 또 그녀를 돕는 진행자들도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일정을 끝내고 우리 120여 명은 연안부두 인근의 숙소에서 다음날 일찍 출항하는 백령도 여행에 기대를 품고 잠자리에 들었다. 백령도에 꼭 가봐야지 하는 마음은 우리 국토의 아픈 손가락 같은 느낌이랄까, 서해 최북단이면서 북한과 가장 가까운 위치라는 상징성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음먹는다고 쉬이 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아침을 먹으며 혹시나 했던 염려처럼 뱃길은 안개가 막고 있었다. ‘국토순례’라는 의미에서도 간단히 방향을 바꾸거나 포기할 수 없는 주최 측이나 참가자들은 하릴없이 안개가 걷히길 기다렸다. 백령도 도착 후로 예정되었던 점심을 인천부두 인근에서 해결하고, 집행부에서 여행의 중단을 결정할 때 출항이 가능하다는 통지가 왔다. 우리는 수학여행 가는 아이들처럼 배에 올랐다. 4시간 반 동안 178Km 바다를 달려 소청도, 대청도를 거쳐 용기포항에 내린 우리는 버스에 나눠 타고 제일 먼저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을 찾았다. 애꿎은 젊은이들의 희생 앞에 다시금 안타깝고 비분강개한 마음이 들었으나 희붐한 안개에 젖은 바다와 섬은 평화롭기만 했다. 5시간 늦게 도착했지만 우리는 어둡기 전에 배를 타고 해상관광으로 새똥에 채색된 기암절벽과 백령도만의 절경을 감상했고, 평소 맛보기 힘든 싱싱한 해산물로 저녁을 먹었다.
우리는 다음날 백령도의 가볼 만한 곳을 다 돌아보고 오후 1시 반에 출항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안개는 또 우리를 막았고, 출항은 연기되었다가 불가가 되어 우리는 하루를 더 묵었고, 그래도 다행스럽게 다음날 새벽 잠시 안개가 걷혀주어 섬을 나올 수 있었다. 나올 때는 들어갈 때와 달리 파도가 드세어 멀미하는 사람들로 배 안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마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고 경험이지 싶었다. 백령도 여행은 여러 가지로 의미를 중첩할 수는 있지만, 섬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이라면 그 풍광이나 볼거리나 특색이 비교적 강렬하게 뇌리에 각인되지는 않을 듯하다. 하필 보름째 안개에 젖어있어 사곶 천연비행장 등을 제대로 못 봐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실망한 여행은 아니지만, 필자는 이번 여행에서 여행의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과 ‘사람의 풍경’을 보았고 그것을 정담으로 나누고 싶다.
놀라운 감동이었지만 조금 당혹스러운 모습이었다. 서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진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은 버스에서 내려 상당히 가파른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일행들은 허리를 접고 헉헉거렸다. 그런데 그 길을 젊은 청년이 땀을 뻘뻘 흘리며 여인을 태운 휠체어를 밀고 올라오고 있었다. 휠체어 주위엔 다른 진행자들이 보조를 맞추어 같이 올라오고 있었다. 내려갈 때 보니 서로 교대로 밀고 당기고 하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거의 없는 이 여행에 저 몸으로 함께 온 것만도 대단한데, 이 높은 곳까지 저렇게 수고를 끼치며 올라와야 했을까, 그냥 차에서 좀 기다리지, 따위의 생각들이 보는 이들의 뇌리에 스쳤던 것 같다. 나중에 보니 이 휠체어 한 사람을 위해 백령도 가이드는 봉고차를 따로 준비했고 그 젊은 진행자가 승하차를 도우며 운전도 하고 함께 다녔다.
왼쪽 팔다리를 못 쓰는 반신불수인데 여인의 목소리는 밝았고 늘 환하게 웃었다. 젊은 진행자들 덕분에 그녀는 우리가 가는 어디에도 함께할 수 있었다. 마침 가까이 있을 때 여인은 나에게도 밝은 목소리로 승차를 도와달라고 청했고 얼른 다가가 왼쪽 다리를 들어 올리려 해봤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진행자들은 너나없이 그녀를 돕는 요령을 아는 듯했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그녀를 도왔다. 그 모습은 고맙고 아름다웠지만 태연자약하게 도움을 받는 그녀는 어떤 마음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백령도 2일째 연꽃마을에서 여흥의 시간을 가질 때 사연이 공개되었고 그녀는 그저 눈물만 흘렸다. 같이 학생회 임원 활동을 하는 그녀는 폐가 되기 싫어 전혀 여행에 참여할 의사가 없었는데, 임원들이 책임지겠다며 무조건 같이 가자는 강권에 못 이겨 용기를 내었다고 한다. 그녀는 화장실에 가지 않으려 식사도 물도 제대로 먹지 않는다고 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미담만 남은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 마음은 한결 환해졌고, 그녀와 진행자들을 보는 눈길도 달라졌다. 그녀의 밝은 미소가 미안함을 덮기 위한 것일지라도 이제는 어색하지 않았다. 그녀의 사연은 뒷이야기로 더 많이 알려졌다. 십수 년의 악전고투 재활운동으로 이만큼이나마 움직이게 되었다는 그녀는, 자신을 방치하지 않기 위해 방송대 공부를 시작했고 문화교양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국문학과에 입학하여 재학 중이라고 했다. 카페관리 등 앉아서 하는 일은 누구 보다 잘하기에 주위의 추천을 받아 서울총학생회 편집국장으로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몸이 불편해진 후 여행다운 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이번 여행은 참으로 벅찬 감동이며, 도와주는 이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마운 마음을 수시로 표현한다고 했다. 제대로 알아볼 생각도 없이 그저 보이는 대로만 판단해선 안 될 일이 비단 여행에서만 있을까!
‘사람이 서로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풍경’은 선의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 선의는 누구나 가질 수는 있어도 표현은 잘되지 않는다. 이번에도 한사코 마다하는 휠체어 여인에게 젊은 진행자들이 “우리 장골 네 사람이면 국장님 휠체어 타신 채로 들고 다녀도 되고요, 교대로 업고 다녀도 됩니다, 걱정 마세요!” 했다고 한다. 그 말에 용기를 내었고 무시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그 말에도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도저히 미안해서 끝까지 고사했다면, 그녀의 벅찬 감격도 있을 수 없거니와 이런 ‘사람 풍경’의 그림도 나왔을 수 없다. 또 그녀가 여행을 와서도 연방 미안해하고 거듭 몸을 움츠렸다면 도우려는 사람들은 훨씬 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용기는 실행할 때 참 용기가 된다. 선의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환히 웃으며 서로 믿는 소통으로 아름다운 자연 경관 속에서 주어진 자기 역할을 한 것이다.
여행은 돌발 상황이 엉뚱한 재미를 선사하기도 하지만, 목적이 분명한 단체여행이 예정대로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으면 가장 애타는 사람은 진행자이다. 이번 여행이 특히 그러했고 주최자인 서울총학생회 회장과 임원들의 노심초사는 곁에서 봐도 안쓰러울 정도였다. 잘 진행되면 당연하고 수고가 드러나지도 않을 테지만, 잘못되면 온갖 불평불만을 받아야 한다. 임원들은 수시로 회의를 하며 상황에 대처했고 결과적으로는 뱃멀미 외에는 아무 사고 없이 큰 행사를 마쳤다. 어쩌면 회장을 중심으로 한 임원들의 일사불란한 단합의 힘이, 몸이 불편한 동료와 끝까지 함께하려 한 그 정신과 은근한 자부심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아무래도 이번 여행은 백령도의 경치보다 휠체어를 앞에서 뒤에서 밀고 당기던 그들의 모습과 덕분에 환히 웃으며 여행을 즐기는 동료의 모습이 각인될 것 같다. 사람 풍경이 아름답게 수놓아진 흐뭇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