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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Sep 29. 2022

마침내 작동한 지푸라기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청약 당첨 ①

휴직하고 처음으로 남편이 살고 있는 남도로 내려온 날, 그날 밤 12시, 꿈에 그리던 청약에 당첨됐다. 드디어 내 집이 생기는 것인가. 당첨 발표가 나던 순간까지의 사족이 좀 길지만 남겨두려고 한다.



일단 남편이 살고 있는 지방으로 터전을 옮기기로 하면서 다소 분주해졌다. 공식적으로 우리 부부의 '메인'집, 즉 내가 지내던 집의 가구, 가전들을 남편이 새로 구한 집으로 모두 옮겼다.


어렵사리 휴직 의사까지 회사에 알리고 나니 업무 인계인수만 남았다. 거처가 마땅찮았던 나는 부모님 댁에 얹혀 3개월 정도 출퇴근을 하기로 하였다. 졸지에 결혼 5년 차에 다시 부모님 댁으로 들어간 딸이 된 거다.


부모님 댁은 대중교통이 불편한 단독주택이라 내 출퇴근에도 차가 필요했고, 남편 또한 차가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지역에 있다 보니 결국 엄마가 불편을 감수하시고 남편에게 차를 빌려주셨다. 부모님 댁으로 전입신고를 함과 동시에 분리세대 신청도 했는데 이로써 나는 부모님께 주소 또한 잠시나마 빌린 셈이 됐다.


분리세대 신청은 우리 부모님 댁 같이 출입문이 여러 개인 단독주택이면서 분리된 공간을 사용한다는 전제하에 승인 요건중 하나를 만족하면 신청 가능하다. (만 30세 이상 or 만 30세 미만이면 결혼을 했거나 소득분위가 일정 수준 이상일 것) 나름대로 알아본 결과 모든 조건을 만족했기에 반차를 내고 동사무소에 방문했다.


그런데 이 제도를 청약 등에 악용하는 사례가 많아서 그런지 직원분들과 한바탕 씨름을 해야 했다. 부모님 댁 도면을 보여드리고, 재직증명원도 먼저 제시하는 등 슈퍼J형으로서 미리 준비해 간 자료를 총동원했고, 혹시 몰라 모시고 간 엄마가 즉석에서 무상거주 계약서를 작성한 뒤에야 간신히 내 신분증 한편에 작은 새 주소 스티커를 붙일 수 있었다.


분리세대 인가를 위해 요란하게 노력했던 건, 얼마 남진 않았지만 수도권에서 지내는 동안 계속해서 청약에 지원해볼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독립된 세대주 자격을 계속 유지해야만 지원이 가능하기에 수년간 많-은 낙첨을 경험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더 해보기로 했다.


이대로 남편과 지방에 내려가서 지내다가 몇 년 후 혼자 다시 올라오게 되었을 때, 두 집살림 특성상 한정된 예산으로 동동거리며 전셋집을 알아볼 텐데, 몇 년 새 지방과 더 벌어진 격차에 좌절하고 무력감을 느낄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얼마나 막막할지 떠올려보니 절실했다. 게다가 마침 관련법 개정으로 국민 평형 84 제곱 이상의 생애최초 등 특공에서도 소득분위와는 상관없는 추첨 물량이 일부 배정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는 몇 개월이니 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었던 거다.


내 절실한 마음을 아신 부모님은 꼭 청약이 아니더라도 (가격대가 많이 올라있음에도) 혹시 매입할만한 집이 있는지 직접 발품을 팔아주셨고, 내가 여유가 없어 직접 못 가보는 분양 예정 공사현장에도 대신 수차례 다녀와주셨다.


이 무렵 내 눈에 들어온 한 분양공고가 있었는데, 향후 5년 뒤가 기대되는 택지개발지구의 아파트였다. 경기도 거주자 자격으로 지원할 수 있었지만 해당 시의 거주자는 아니었기에 차순위로 밀릴 것이고 생애최초 특별공급 전체 물량 중 추첨 물량은 일부이기에 한마디로 확률은 매우 희박했다.


그러나 남편도 웬일인지 장래성이 좋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심지어 결혼생활 최초로 직접 공사현장에 임장을 가보자는 게 아닌가.



주말에 만나 문해본 우리는 만족했다. 허허벌판 모래밭에 철제 펜스들이 구획별로 쳐져있고 땅은 여기저기 파헤쳐져 있었으며 드문드문 생뚱맞아 보이는 시청, 경찰서 등의 관공서가 전부인 곳. 지금은 우리가 걸어 다닐 인도조차 마련되어있지 않지만, 그만큼 탈바꿈 하리란 것을 직감했다. 시에서 정비 중인 개발지구답게 지반부터 다져져 평지를 이루고 있었고 예정된 부지에 아파트들과 학교가 들어서고 나면 이미 갖춰진 행정시설과 맞물려 꽤 괜찮은 미니신도시가 될 듯 보였다. 또 사전청약 중 진행이 빠른 축에 속해 25년 입주 예정이고, 계약금은 24년 4월부터 치르면 되는 건으로서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거나 지원자격이 까다로운 공공 사전청약보다 나아 보였다. 물론, 예정된 전철역의 착공이 미뤄졌고 근처 유해 공장시설 이전을 추진해야 하는 등 갈 길이 꽃길인 것은 아니었지만 확신을 갖고 지원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청약홈 어플로 실제 청약에 지원하는 날, 정작 내가 한창 회사에서 업무를 하다가 그만 오후 4시까지 잊고 있었다. 남편은 여기서 한 번 더 평소 같지 않은 관심과 케어를 보였는데, 나에게 무려 전화를 걸어 아직 지원 안 했냐며 84B형으로 지원하라는 게 아닌가. 구조가 제일 낫지만 세대수는 제일 적길래 갸우뚱했다. 평소 나 같았으면 제일 세대수가 많은 A형에 넣었을 텐데 직접 전화까지 해서 소신지원을 권하다니. 어차피 될까 싶어 그냥 말을 들어보기로 했고 다음 날 경쟁률 뚜껑을 열어봤는데 깜짝 놀랐다.


우리가 지원한 B형만 생애최초 특별공급 당해지역이 미달된 것이다. 25세대가량을 뽑는데 15세대의 당해지역 지원자가 있었고, 고로 우리 같은 기타경기 지역 지원자에게도 (150명이 넘긴 하지만), 어쨌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다른 유형들은 이미 당해지역 지원자들로만 1:1을 넘겨버린 상황이었다.


너무 기대하면 실망이 크다는 것을 알기에 발표일까지 괜스레 기대 안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방어기제를 펼쳤다.


회사에서 마침내 인계인수를 마무리하고 정말 내려갈 준비를 시작했다. 나름 부모님 댁에 3개월가량 지내면서 꽤 많아진 옷가지와 내 잡동사니들을 정리하고 서운해하는 엄마한테도 놀러 오시면 된다며 밝은 표정으로 인사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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