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 한 달씩 다녀온 소감이 어떠냔 지인들의 물음에 저리 자신 있게 답하면 좋겠지만 속으로 삼킨다.뜨악했던 순간들도 분명 있었으니..
1. 벌레
빨래를 개는 남편 옆에 누워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침대 위 생명체는우리 둘 뿐인 줄 알았건만 난데없이 남편이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
"악 바퀴벌레!! 어우 c"
덩달아 놀란 나도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고 침대 위 하얀 시트를 가로질러 분주하게 도망치는 조그만 녀석을 보고야 말았다. 손에 잡히는 아무거나 쥐고 사라진 방향을 추적했으나 이미사라진지 오래."순간 위기에 처하면 바님의 아이큐가 150까지 치솟는다"는 남편의 절망적 이론까지 듣고 나니 더 이상 찾고 싶지도 않아졌다. 못 찾을 테니.
짐이 들어있는 캐리어들을 황급히 잠그고 로비에서 해충약을 빌려와 침대 밑에 뿌려보았다. 그날 밤엔 괜히 몸이 간지럽고 무언가가 얼굴 위를 기어간 것 같아 잠을 설쳐야 했다.
시간이 흘러 체크아웃하는 날. 대대적으로 짐 정리를 하며 캐리어 속의 옷을 꺼냈는데 뭔가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분명 그 놈이었다. 크기며 자태며 딱 너였다. 웃기게도 황급히 잠가둔 캐리어에 갇혀 굶어 죽은 것이다. 가방 속에 먹을 것을 두지 않아 다행이라며 웃고 넘길 정도로 우리 부부는 그 사이 단련 되었다. 모기 하나 잡는데 에프킬라를 몇 초씩 난사하던 남편은 이제 한 손으로도 거뜬할정도!
치앙마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태국은 정말 벌레가 많은 나라였다. 숙소에서 목격한 집바퀴는 양반이고 방콕 맨홀에서 목격한 야생 바퀴는 그 큰 게 붕붕 날아다니기까지 하니그야말로 극혐이었다. 다 지나가실 때까지 걸음을 멈추고 남편과 서로 먼저 가보라 떠밀던 밤이 아직 선명하다.. 모기는 공기와 같은 일상적 존재였고, 그보다 독한 샌드플라이도 많아 가져간 버물리를 다 쓰고 왔다.
태국에서는 동식물을 함부로 건드리면 큰 벌금을 문다고 한다. 모든 생명을 중시하는 문화의 영향인지 벌레마저도 그다지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는데 쫄보 부부로서는 담력 기르는 전지훈련을 강제로 한 셈이었다.
헛된 수색
2. (처참한) 도보 상태
치앙마이는 솔직히 보행자 존중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곳이다. 도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고 있다 해도 대부분 위태로울 정도로 좁다. 날이 덥다 보니 다섯 걸음만 넘어가면 오토바이를 타는 나라라지만, 그 다섯 걸음을 어디서든 걸을 순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처음엔 차와 오토바이가 마주 오는 방향으로(언제든 피할 수 있게) 걷곤 했지만 3주쯤 지나고 나니 알아서 피해 갈거라 믿게 됐다.적당한 안전불감증이 속 편하다며자포자기 한 셈.
치앙마이엔 택시(툭툭 포함)를 제외하곤 대중교통이 전무한 상태이니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오토바이, 차를 소유하면서 보행자를더 찾아보기 어려워진 듯하다.
3. 매연 + ∂ (딱딱한 승차감)
방콕이 더 극심했지만 치앙마이도 낡은 디젤차들이 내뿜는 매연으로둘째가라면 서럽다. 외출시 코 끝 기름 냄새가 디폴트. 이쯤되면 덜컹대는 툭툭을 타고 매연 바람 맞지 않고선 태국 왔다간 보람이 없다고도볼 수 있지않을까. 우습게도 주유소 냄새를 싫어하진 않기에 버틸만했다.
그런데.. 냄새보다도 승차감이 영 좋지 않아 엉덩이가 아프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알고보니 태국 도로는 우리나라의 도로보다 더 딱딱하다고 한다. 아스팔트 보다 경제성과 내구성이 더 뛰어난 콘크리트 비율을 높여 포장하기 때문. 미친 더위에 변형되거나 울어버린 도로를 한국에서도 종종 본 적 있으니 무더운 태국에서는 오죽할까. 그러고 보니 도로 자체도 약간 밝은 백색빛이 나는 듯했다.
4.Only cash
상점, 식당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 이마트 정도 되는 대형마트에서도 어김없이 현금만 받는다. 치앙마이에서 카드 결제가 가능한 곳은 대표적으로 마야몰(백화점), 림핑 슈퍼, 노스힐 골프장, 님만해민 지역 펍(3~5% 추가차지), 몇몇 레스토랑 정도인데 무조건 현금을 충분히 준비해 오는 것이 좋다. 우리는 카드결제가 되는 곳이라면 무조건 카드를 사용했음에도 현금보유고가 급격히 메말라, 피 같은 220밧(어딜가나 ATM수수료는 약 8000원) 수수료를 물며 두 번씩이나 더 인출해야 했다....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트레블월렛 한 장만 들고 다니면 모든 게 해결되던 다른 나라들을 떠올리면 큰일 난다. 아직 태국은 너무나 현금 문화이다.
불편함과 성가심들이 어떤 장소를 떠올릴 때 장점들보다 먼저 떠오르기도 하는 것 같다.맵고 쓴 것도 맛이라더니 어느새 치앙마이 한 달 살이에 양념이 되어 맛을 더해줬나보다. 그럼에도여유롭고 순박하던 그곳을 다시, 더 누벼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보니, 순한 맛이워낙 압도적이라 소리소문 없이 센 맛을 눌러버린 게 분명하다. 나에겐 신라면을 이긴 황태뭇국 같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