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맺음
밤은 오래전에 내 곁에 앉았습니다.
새벽하늘 위로 흰 수증기기 낮게 깔리고,
몸을 아리는 바람이 코끝을 스친 뒤, 바로 사라집니다.
남는 것은 차가움뿐입니다.
막 생긴 발자국은 곧장 지워지고,
지워진 자리마다 공백이 내려앉습니다.
앞과 뒤가 똑같이 희미해지는 풍경 속에서,
걸음은 더 이상 방향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불려보려 하지만,
세상은 그걸 허락하지 않습니다.
목소리는 한 글자씩 깨져 파편으로 떨어지고,
그 소리는 깊은 물속처럼 멀어집니다.
나는 그 조각들을 줍지 않습니다.
주머니도, 손바닥의 온기도 남아 있지 않으니까요.
벽에는 오래된 물기가 눌어붙어 있고,
누군가의 낙서는 어둠 속으로 스며듭니다.
가로등은 바람에 흔들리며 길게 찢어진 빛을 늘어뜨리고,
그 빛은 내 발치에서 바로 끊어집니다.
희망이라는 말은, 이상하게 더 춥습니다.
그 단어의 끝에 엉긴 얼음이 달려 있어,
만질 때마다 차가운 조각들이 몸속 어딘가로 번져갑니다.
나는 오늘만큼은 그 말을 부르지 않기로 합니다.
부서지는 소리 대신, 침묵을 택합니다.
당신에게 닿지 못한 시간들이 눈처럼 켜켜이 쌓였습니다.
만지면 녹을 것 같던 장면들은 만지기도 전에 허물어졌고,
붙잡으려던 손끝에서는 공기만 새어 나갔습니다.
나는 배웁니다.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으려 했던 손의 모양이
얼마나 오래 아프게 남는지를.
그래서 멈춰 서봅니다.
걷는 뜻마저 겨울에게 맡깁니다.
기다림은 더 이상 움직임이 아니라 정지이고,
정지는 체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 지금, 이 한가운데 남아 있는 것은
침묵과 공백과 차가움과 절망입니다.
봄이 오지 않는다는 예감은 이제는 풍경입니다.
창틀엔 성에가 자라고,
나는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듯
기댈 데 없는 밤에 몸을 맡깁니다.
당신에게 말하지 못한 문장들은 내 안에서 얼어붙고,
나는 그것들을 녹일 불을 더 이상 찾지 않습니다.
그렇게 겨울은 하나씩 빛을 가져가고,
나는 남겨진 어둠의 무게를 조용히 세어봅니다.
끝내 남는 이름을 적으려면,
여기, 오직 절망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