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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evieve Oct 29. 2022

타지에서 아프면 어떻게 되나요?

코로나, 호주 병원, 메디케어 카드, 보험?

해외에 살면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최고라는 걸 몸으로 느끼게 된다.


타지 생활 초반에는 물갈이를 하듯 아픈 경우가 허다하다던 게 정말이었다. 나라마다 공기 중에 있는 바이러스가 달라 면역력 문제와 함께 몸이 적응해나가는 과정이라고는 들은 바가 있는데, 진짜 이렇게 매달 아파댈 줄은 몰랐다.

어릴 때부터 원래 몸이 허약한 편이기는 했는데 아니, 감기몸살이 이렇게 매달 온다고? 신기해서 몇 번이나 아팠는지 보려고 다이어리에 몸살이 올 때마다 기록을 해놓을 정도였다.

4월, 6월, 7월, 8월 매달 몸살이 꽤 심하게 왔다. 다닌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회사에 병가도 연달아 계속 쓸 정도로 아팠다.




약국 약이 듣지 않아 아픈 지 3일째 되던 날 그냥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감기 치고는 몸살이 심했다. 근처 병원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구글 맵을 켜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걷는 것도 힘이 들었지만 살고자 하는 의지가 더 강했다. 병원 문을 열고 카운터에 가서 말을 걸었는데, receptionist가 나에게 물었다.

'메디케어 카드 있어?'


Medicare card라는 건 호주에서 영주권 혹은 시민권자가 부여받는 카드인데, 이를 소지하고 있으면 국립 병원에서는 돈을 내지 않고 무료로 진찰을 받을 수 있다. 호주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온 내가 있을 리가 없었다.

'없으면 의사랑 만나기 위해 $50을 내야 해. 아 그리고 캐시로만 받고 있으니 없다면 현금을 인출해 와.'


그냥 감기 때문에 약을 처방받기 위해 5분도 되지 않는 상담 지불료가 $50이라니. $80을 받는 병원들도 많이 봤으니 가볍게 보고 나오는 의사 진료비가 평균 7만 원 정도라고 보면 된다.

근처에 ATM 기계를 열심히 찾아봤지만 안타깝게도 주변에는 은행도 다른 병원도 없었다. 대중교통을 타고 어디론가 가야 하는데 너무 아파서 그럴 힘까지 나지 않았다.

약국 약이 듣지 않고 삼일 째 아파서 침대에만 있으니, 그냥 조금 더 센 병원 약을 처방받고 싶었던 것뿐인데. 뭐가 이렇게 힘들지. 나는 자국민이 아니니까 병원 한 번 가는 게 힘들구나.

도움을 받을 곳이 없다는 느낌이 크게 다가와 서러웠고 아파서 더 서러웠다.


처음으로 길거리에서 혼자 엉엉 울면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왔다. 내 나이 또래 어떤 남자애가 멀리서 날 보더니 당황해하며 도와주고 싶어 했던 눈길을 줬던 것 같은데. 아니야 그냥 말 걸지 않아 줘서 고마워.


다음 날 몸살 4일 차, 다른 지역에 있는 큰 센터에 찾아갔다.

'우리는 예약을 전날에 해야만 의사를 만날  있어 미안'

급하게 주변 병원들을 찾아보았으니 하필 그 근처 병원들은 다 문을 닫았다. 버스를 타고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했다. 이번에는 미리 전화해서 예약도 했다.

세 명 정도 대기하고 있던 병원, 여기도 현금으로 $50을 요구했다. 옆에 ATM이 있어서 현금을 인출해 왔고, 맥시멈 30분만 기다리면 될 거라고 했다.

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는 내 이름이 불렸고 의사를 본 시간은 3분 정도 된 것 같다. 내가 특별히 운이 나빴던 게 아니라 정말 호주는 예약을 하고 가더라고 병원에 가면 한 시간 정도는 기다린다. 규모가 작은 병원은 금방 들어가기도 하지만.


그리고 듣게 되는 의사의 처방은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많이 마시고 파나돌  먹어'

듣기만 해도 지긋지긋한 파나돌. 호주 의사들은 파나돌 협회에서 나온 게 아닐까 싶다.

파나돌이란 한국의 타이레놀과 같은 국민 약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사실 감기라는 게 몸에서 바이러스를 이겨낼 때까지 자연치유를 기다리는 방법밖에는 없기도 하고, 굳이 항생제를 몸에 넣지 않는 것이 가장 건강하다. 하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의사를 만나러 가는 환자들은 이걸 몰라서 가는 걸까. 이렇게 귀찮은 과정들을 거치고 진료 비용도 저렴하지 않은데 저런 말을 들었을 때 '알겠어 그렇게 할게 고마워!'하고 웃으며 집으로 돌아올 환자가 몇이나 될까. 그래서 되물었다.


'나 파나돌 사 먹으라는 말 들으려고 진료받으러 온 거 아닌데? 파나돌 먹어도 호전되지 않아서 온 거니까 센 약을 처방해 줘.'

의사는 그제야 병원 약을 처방해 줬고, 한국에서 들어온 보험으로 비용을 처리했다.




건강은 정말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특히나 바이러스 같은 경우에는 평소에 몸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운동을 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찾아온다. 그 당시 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옷을 계속 만지는 일을 했기 때문에 더 자주 아팠던 것도 같다.


그리고 올해 2022년 5월, 한국 입국 바로 전 날 나는 코로나에 걸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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