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나무.

황성공원 소나무숲

by 야또니



우리엄마는 나를 갖고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나오는 꿈을 자주 꿨다.

그래서 내 이름 가운데 글자는 소나무 송松이다.

작명소나 철학관에서 받아 온 이름이 아니고 엄마가 옥편을 보면서 지었다고.


소나무는 주변에 다른 나무를 자라지 못하게 하고 잎이 바늘처럼 뾰족해서 외롭다.

그래서 이 한자는 사람 이름에는 쓰지 않는다고 한다. 엄마가 이 사실도 좀 알았으면 좋았으련만.

이름 때문인지 친구가 많이 없는 까칠한 사람으로 무럭무럭 자랐다.

이름 때문인지 나무를 다루는 전공을 하게 되었고

이름 때문인지 전국의 소나무를 뽑아다가 신축 아파트 단지에 심는 일을 했다.

그 고운 이십대땐 송충이같은 놈들만 만나서 마음 고생만 실컷 했으니.

이건 다 망할 이름, 아니 망할 소나무 때문이다.


그렇지만 말입니다,

소나무는 척박한 산성 토양에서도 잘 자란다.

나는 가족의 화목과 행복과 경제적 풍족함이 아주 척박한 가정환경에서도 말라 비틀어지지 않고 (이만하면) 잘 자랐다.

꽃이 화사하고 아름답지는 않지만 사계절 변하지 않고 푸르러서 꿋꿋한 선비의 이미지다.

나의 샌님기질은 소나무에서부터 나왔나 싶다.

꽃가루부터 꽃, 잎, 껍데기, 목재까지 안 쓰이는 데가 없다.

특정한 분야에 괄목할만한 재능은 없지만 ‘뭐든 시키면 중간 이상은 사람, 제 몫은 하는 사람’ 라는 이야기를 듣는걸 보면 두루 쓰임새가 있긴 한가보다.

소나무는 장수의 상징이고 나무 중에 제일 비싸니, 나의 선비력으로 하루하루 갈고 닦으면 내 가치가 점점 올라 비-싼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황성공원 소나무 숲


필름카메라로 찍어서 소나무 그늘이 강조되었다.


신라시대 화랑들이 훈련 했다는 역사 깊은 곳.

경주에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이곳에서 울창한 소나무 숲을 발견하고는

' 여기 살게 된 것 또한 이름 때문인가...? ' 싶었다.



맥문동 꽃이 가득 핀 황성공원 소나무 숲.

거북이 등껍질 무늬의 밤색 소나무 수피와 바닥에는 보라색 구름.

여름에만 만날 수 있는 이곳만의 풍경이다.


숲 사이로 맨발로 걸어다닐 수 있게 보드라운 황토길을 만들어 놓았다.

삥이는 이곳에서 걸음마 연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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