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릉과 벚꽃가로수길
이번주는 경주의 벚꽃 주간.
벚꽃을 보며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아 예쁘다 - ‘ 했다면 올해는 좀 이상하다.
연분홍 꽃나무를 보는데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기숙사 가는 길 벚꽃이 예쁘니까 보러 가자고 한 녀석이 생각이 나버렸다.
내가 만난 사람중에 제일 똑똑한 사람이었다. 이상한 촉이 발동했고 지금도 연구를 하고 있을거라는 확신에 이르렀다.
망설임 없이 구글에 ‘*** 교수’를 검색했다.
와 너 진짜 교수님이 되었네!
처음에는 진심으로 기뻤다.
그래 맞아. 너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하마터면 연구실 직통번호에 연락해서 축하인사를 할 뻔 했다.
그러다 한없이 기분이 가라앉았다.
이 친구가 한 걸음 한 걸음 목표를 이루며 살고 있을 때 나는 시들시들한 아줌마가 되었네.
내가 너무 초라했다.
어떤 날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무기력한 상태로 가만히 누워 있다가 억지로 몸을 일으켜 오릉에 갔다.
나지막한 릉의 곡선이 내려 앉는 곳에 고라니와 까치가 있는 풍경.
민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웠다.
그리고 나는 별볼 일 없었다.
또 다른 날은 목적지도 없이 첨성대며 분황사 터 주변을 뱅글뱅글 돌았다.
길을 잃으면 또 다른 벚꽃길을 만날 수 있으니 헤매도 나쁠 건 없었다.
그때 우리는 피기 전 꽃망울처럼 가능성으로 가득했는데, 지금의 나는 땅에 떨어져 볼품 없이 갈색으로 변해버린 목련 꽃잎같네 - 하고 생각했다.
이날의 BGM은 에피톤 프로젝트의 ‘봄날 벚꽃 그리고 너’
급기야 어제는 ‘봄날 벚꽃 그리고 너’ 악보를 구해다 치기 시작했다. 쿵짝짝 쿵짝짝 가벼운 왈츠 선율이 설레는 봄날 무드.
기숙사 앞 커어다란 벚꽃나무 아래를 걷던 우리가 떠오른다.
그 순간이 그렇게 아름다웠다는걸 그때는 몰랐다.
너는 계속 승승장구 하길. (이왕 이렇게 된 거 노벨상 타라.)
나는 나대로 멋진 사람이 될게.
아무튼 이게 다 벚꽃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