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미식가 친구가 우리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초대장
주변 친구 중 유일하게 수비드 기계를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다.
매일 자신이 만든 요리 사진을 올리곤 했는데, 그 수준이 범상치 않다고 추측만 해왔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식탁 앞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무려 오픈 키친을 빌려서 우리에게 저녁을 차려주겠다는 친구. 첫 초대 손님이 우리라서 고마웠고, 또 기꺼이 함께하고 싶었다. 나는 맛있는 디저트와 무엇이 나와도 맛있게 먹겠다는 마음을 가져가기로 했다.
요리는 맞이부터, Welcome
건대의 어느 옥탑방에 있는 오픈 키친. 진구네 식탁은 여러 로망의 요소를 가진 곳이었다. 요리하는 이와 마주 보며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 구조였고, 작은 공간에 가득 찬 4인용 식탁이 더 집중하게끔 만들었다. 원준은 막 도착한 우리에게 웰컴 드링크를 만들어주었다.
살구향이 나는 리큐르(디사론노 Disaronno)에 오렌지주스, 탄산수를 적절한 비율로 섞으면 그 맛이 참 감미로웠다. 섬세하게도 자주 가는 단골 커피집에서 100% 생과일 오렌지주스를 사 왔다.
라미네이드한 올리브와 페타 치즈, 구운 샤워도우 빵
: 페타치즈를 적당한 크기로 부시고, 그 위에 레몬 껍질, 마늘 등으로 라미네이드한 올리브를 뿌린다. 그리고 살짝 팬에 구운 샤워도우 빵을 곁들이는 요리.
각각 들어본 이름은 들어본 재료들이지만 낯선 조합에 상상이 쉽게 가지 않았다. 배고픈 배를 이마트 감자칩으로 채우다가 이 요리를 보자마자 우리는 감자칩을 최대한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짭짜름한 페타치즈와 어울리는 고소한 올리브 오일, 마지막으로 쫄깃하면서도 산미가 있는 사우얼브래드의 놀라운 조합에 우리는 메인 디시를 대하듯 먹었다.
나중에 이야기하길, 원준이도 처음 시도해봤다며 오늘 요리 중 가장 흥미로웠던 디시로 꼽았다.
제 각각의 맛을 지닌 재료들의 조합. 맛이 참 풍부했다.
카쵸 에 페페 파스타
: 카쵸(치즈)와 페페(후추), 버터 세 가지 재료로 만드는 파스타 요리.
원준이는 인도에서 친구가 사다 줬다는 흑 통후추를 사정없이 으깨기 시작했다. 그리고 따뜻한 파스타 면에 버터를 넣어 잘 녹아들게끔 저어주었다. 화룡점정으로 짭로롬한 하드 치즈를 아낌없이 갈아줬다.
어디에 얹어도 맛있는 치즈의 맛과 후추의 매콤한 맛, 버터의 진한 맛이 어우러져 다양한 맛을 내었다.
간단한 듯 하지만 기본적인 재료로 풍부한 맛을 낼 수 있다는 장점에 가장 도전해보고 싶은 요리라서 나도 통후추를 주문했다.
뼈 등심 구이와 사과소스 그리고 브뤼셀 스프라우트 샐러드
: 로즈마리와 함께 수비드 한 뼈 등심을 꺼내 겉표면이 바삭해지도록 버터와 함께 구워준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갈변되지 않도록 사과식초와 함께 만든 사과소스를 얹고, 미니 양배추로 만든 가니쉬를 곁들인 요리.
큼지막한 돼지고기에 예상치 못한 사과소스의 어우러짐. 이를 돕는 브뤼셀 스프라우트(미니양배추) 샐러드의 아삭한 식감.
우리나라에서 돼지고기를 크게 썰어낸 요리는 아직까지 삼겹살 외엔 흔치 않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비슷한 예시로 가지의 식감을 살리지 못하고 숨을 죽여버린 가지볶음을 이야기했다. 가지볶음의 개인 취향일 수 있지만, 가지가 맛있는 줄 모르다 가지 라자냐를 먹고 깜짝 놀란 적이 떠올랐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 받는 사람
만들어 준 음식을 먹다 보니 플레이트 속에서 원준이가 보인다. 모든 음식들이 새롭고 도전적인데 그 조화가 멋들어진다. 어떤 특출한 맛이 지배하기보다 단맛, 신맛, 매콤한 맛, 짠맛이 모두 어우러질 수 있도록 조율을 한다.
아마 원준이 성격과도 비슷한 면이 있고 원준이가 기획하는 서비스도 이런 느낌이겠지.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식'이 주는 만족감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좋은 음식을 먹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준비 과정부터 정성스러움이 느껴지는 한 끼 식탁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원준이 덕에 한 끼 줍쇼라는 예능을 돌아보니, 낯선 이에게 식탁을 내어 준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좋은 식사에 초대받으니,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마음 편한 이의 나눔을 받으니, 나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지난 주말.
원준이의 더 많은 요리들을 응원한다.
: https://www.instagram.com/my_palate_diary/
이 초대에 정은이 재현이도 각자의 방식으로 후기를 남겼다. 같은 요리를 먹고 각자의 시선으로 남기는 일도 참 흥미롭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려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주말.
photo by 재현, 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