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어른이의 영감은 영화에서 온다(2022)」
나는 매사 생각이 많다. 가벼운 질문에도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고민한다. 내면의 데이터처리 속도가 느린 편이다. 조금이라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면 힘들다. 내가 통제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문제가 생기면 해결되기 전까지 스스로 만든 걱정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 모습을 캐릭터로 비유하자면 보노보노와 죠르디가 떠오른다. 해달 보노보노는 매일같이 동굴 아저씨가 자신을 잡아 가둘까 봐 무서워한다. 애벌레같이 생긴 공룡 죠르디는 미간의 스프링에 항상 심오한 고민거리를 품은 것 같다. 잠시라도 온전하게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다른 일에 몰두하는 방법을 몇 가지 시도했는데, 그중에 가장 효과가 뛰어난 것이 영화 감상이었다.
영화는 예상외로 친절하지 않은 매체다. 2~3시간 내외의 몰입할 수 있는 적당한 러닝타임이 지나면 어떻게든 결말을 보여준다. 그러나 책처럼 행간을 이해할 충분한 여유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낸다. 시간이 지나면 감명 깊게 읽었던 책도 영화도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에서 흐릿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영화가 담아냈던 스크린의 이미지, 배경음악, 대사, 배우의 연기, 분위기 등은 마음속 한 구석에 무형의 감정으로 다시금 떠오르곤 했다.
이렇게 쌓인 영화에 대한 감상들은 고리타분한 행정학 전공과목 중 유일하게 기본서가 없었던 ‘창의성과 시스템 사고’에서 잠재력을 발휘했다. 매 주차마다 주어진 주제와 관련해 다양한 방식으로 발표를 진행했던 그 수업에서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영화와 영화를 연결하는 방법을 썼다.
같은 의미를 다르게 표현한 영화, 상반된 주제 의식을 담은 영화, 다른 매체와 비교할 수 있는 영화 등등 소재로 활용할 수 있는 영화들은 무궁무진했다. 개중에는 지난해 김하늘, 윤상현이 출연했던 JTBC 드라마의 원작 <17 어게인>, 내년에 또 다른 시리즈 개봉을 앞둔 첩보물의 대표 프랜차이즈 <미션 임파서블>도 있었다.
영화를 재해석하는 사고를 원기옥처럼 모아, 마지막 과제였던 ‘창의적 방법으로 교정의 모든 나무지도 만들기’에서 나무를 조사하는 과정을 별주부전으로 각색해 가장 좋은 학점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의 영화적 영감을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왠지 적고 나니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듯한 몇몇 문장들을 돌이켜보면 한없이 유치하고 부끄러운 일기장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느낌이 들었나 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나는 대학생이 아니지만, 마치 평행이론처럼 직장인으로서 과거의 영화적 영감이 가장 필요한 터닝 포인트를 맞고 있다.
하나씩 천천히 생각의 가닥을 정리하다 보면
다시 그 감각이 돌아오지 않을까?
아직도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
세상의 모든 어른이들과 나누고 싶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화 감상
그리고 그 속의 일상적 영감에 대하여
어른이의 영감은 영화에 온다(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