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포로! 혁포로!”
눈이 오던 날, 내가 사는 동네의 앞글자를 따서 창 밖의 풍경이 눈이 내린 삿포로 같아 외친 말이다.
어릴 땐 눈이 기다려졌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밖을 확인하고, 하얗게 변한 세상을 보면 마치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뻤다.
눈이 쌓이면 신발이 젖든 말든 뛰어다녔고, 손이 시려도 눈사람을 만들고 싶었다. 그때의 눈은 그저 ‘하얀 마법’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눈이 반갑지 않다. 창밖에 눈이 내리면 예쁘다는 생각보다 걱정이 앞선다. 도로가 얼진 않을까, 차가 밀리진 않을까, 출근길이 험난해지진 않을까.
운전을 하게 되면서부터 눈은 위험 요소가 되었고, 길을 나서야 하는 입장에서 눈은 더 이상 낭만적인 풍경이 아니다.
하지만 운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릴 적엔 그저 눈이 ‘온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지만, 지금은 눈이 오면 따라올 ‘불편함’을 먼저 떠올린다.
어쩌면 우리는 눈을 싫어하게 된 게 아니라, 눈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눈만이 아니다.
비도 그렇다. 어릴 땐 비가 오면 우산을 쓰지 않고 일부러 빗속을 뛰어다녔다. 옷이 젖어도, 신발이 흙탕물이 되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비가 오면 그저 귀찮다. 우산을 챙기는 게 번거롭고, 옷이 젖을까 조심스럽고, 차가 막힐 걸 생각하면 짜증이 난다.
놀이공원이 그렇고, 놀이기구가 그렇다. 어릴 땐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지치지 않았는데,
이제는 줄 서는 시간부터 계산하게 된다. 어릴 땐 가슴이 뛰던 것들이, 이제는 피곤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감성이 무뎌진 건 아닐 것이다.
가끔은 아무 걱정 없이 비를 맞고 싶기도 하고, 큰 눈사람도 만들어 보고 싶다.
그리고 바쁜 걸음을 멈추고 눈이 쌓인 풍경을 바라볼 때가 있다.
불편한 현실 속에서도 문득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순간, 어릴 적 설렘이 아주 사라진 건 아니라고 믿고 싶어진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건 동심이 아니라, 그때처럼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설렘을 느끼던 ‘순간’ 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