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30분, 휴대폰이 날카로운 경보음을 울렸다.
자다 깬 나는 본능적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고, 그 순간 메시지가 쏟아졌다. “방금 흔들림은 못느꼈는데?”, “뭐야, 이 새벽에 지진이야?” 지인들끼리 놀란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 온라인 커뮤니티도 이미 난리가 나 있었다.
그런데 반응은 둘로 갈렸다. 놀란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 그리고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들.
“이게 왜 긴급재난이냐?”, “재난문자 좀 적당히 보내라.” 물론, 새벽잠을 깨운 경보음에 짜증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런 재난 경보 시스템조차 없다면?
우리는 종종 ‘나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일’에 무뎌지곤 한다.
내 지역이 아니라면, 나와 연관된 사람이 없었다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뉴스로 소비될 뿐이다.
하지만 과거를 돌이켜보면, 정보가 늦어 피해가 커진 사례는 많았다.
1977년 이리역(현 익산) 폭발 사고 때, 많은 사람이 뉴스로 소식을 접한 뒤 가족과 지인들에게 한꺼번에 전화를 걸었다. 그 결과 전화망이 마비되었고, 정작 긴급한 연락이 필요한 사람들은 연락조차 할 수 없었다.
기술이 발전한 지금은 경보 시스템이 빠르게 작동한다.
하지만 우리가 점점 무뎌지는 것은 아닐까? 위험을 알리는 신호를 불필요한 소음으로 치부하고,
나와 직접적 연관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것.
그런 무관심이 쌓이면, 결국 우리 사회는 더욱 삭막해질 수밖에 없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이 내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곳에 내 가족, 내 친구가 있었다면? 재난문자가 불편한 경보음이 아니라, 서로를 지키기 위한 신호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때로는 깨어나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새벽을 깨운 경보음은 어쩌면, 우리에게 더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