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야키 (けやき)
케야키는 이미, 삿포로 여행을 계획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게 신기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10여년 전 삿포로 여행을 처음 계획하던 나도 맛집 정보들을 수집하다가 압도적인 숫자로 이곳이 등장해서 아, 여긴 꼭 가봐야겠다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삿포로 라멘 맛집이란 건 너무 많아서 그중에 꼽는 일이 좀 곤란하긴 하다. 그러나 이런저런 조건을 붙여가다 보면 시간적 한계가 있는 여행자들에게 가 볼 수 있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너무 매니악하지 않아야 하고, 너무 가기 힘든 곳에 있지 않아야 하고, 기다림의 수고가 맛으로 보상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케야키를 여행자들이 최고로 꼽을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삿포로에는 유명한 라멘집이 17군데나 모여있는 라멘 골목인 라멘 요코쵸, 삿포로역 백화점 상층부에 존재하는 라멘 공화국 등 힘들이지 않고도 손쉽게 유명한 라멘을 맛볼 수 있는 곳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케야키는 그곳에 있는 가게는 아니다. 처음 삿포로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가는 길이나 교통편 등을 꼼꼼하게 알아두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막상 찾아가서도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수고도 해야 한다. 아카렌가 건물이 들어서면서 최근에는 그곳에도 입점해 있으니 접근도 편해지고, 예전처럼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긴 하지만 나처럼 본점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여전히 기다림을 각오하는 편이 좋다.
삿포로 라멘의 진가는 역시 겨울에 발휘된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라 삿포로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도 마찬가지어서 추운 날일수록 가게 앞은 북적인다. 하지만 날이 추운 겨울에는 그 시간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지 실제로 나도 줄을 섰다가 두 번이나 포기한 경험이 있고, 세 번째에서야 30여분을 기다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본점의 좌석은 딱 열개뿐인데 아마도 주방에서 최선으로 커버할 수 있는 인원이 그것뿐이라 판단한 사장의 고집 때문일 것이다. 1999년 10월 오픈 이래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1월의 어느 날 저녁,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의 케야키 역시도 시끌시끌한 사람들이 라멘을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 놀러 온 듯 한 아저씨 세명이 내 앞줄에 서 있었는데, 이미 거나하게 술에 취해서 옷을 까뒤집고 배를 두드리질 않나, 침을 튀기며 동네가 떠나가도록 웃지를 않나,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고 알고 있는 일본인들의 성격이 무색하도록 난리법석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게 안에 들어가서 의자에 앉는 순간 조용해졌다. 마치 누군가가 술 깨는 약을 들이붓기라도 한 듯이.
일본의 다른 지역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삿포로는 유난히 해장용으로 라멘을 많이 먹는다. 그래서 저녁에 문을 열어 새벽까지 영업하는 라멘집이 많은 데다 그런 신기한 풍경도 왕왕 볼 수가 있다.
추운 날 밖에서 떨다가 한수저 떠서 입에 넣은 케야키의 된장라멘 국물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추가로 주문한 말랑말랑한 달걀의 겉면에는 케야키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크고 두툼한 차슈는 너무 부드러워서 입에서 살살 녹았다. 잘 볶은 돼지고기와 뜨끈한 라드유가 섞인 구수한 된장 육수, 거기에 케야키 특유의 매콤한 감칠맛이 좋아서 배가 부른데도 자꾸만 숟가락질을 하게 했다. 음.. 아니면 떨다가 먹어서 더 맛있었을까?
어쨌든 ‘오감에 호소하는 일품 라멘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니토리 에이키(似鳥栄喜) 사장의 신념을 증명이라도 하듯 현지인과 여행객 모두 오늘도 변함없이 긴 줄을 늘어서고 있다.
주소 札幌市中央区南6条西3丁目 (스스키노 본점)
오픈 월-토 10:30~익일 새벽 4:00, 일 10:30~익일 새벽 3:00
휴무 없음
가격 콘버터라멘 980엔, 삶은달걀라멘 930엔, 차슈라멘 1200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