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어르신'의 독백-11
캐나다로 이민올 때 자식들의 미래와 관련하여 아내와 내가 나름 확고한 신념 하나를 갖고 있었다. 자식들이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 것인지는 전적으로 본인들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것이었다.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하든, 졸업 후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캐나다 어느 도시에 정착하든, 한국으로 돌아가든, 아니면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든 본인들의 선택을 존중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배우자를 선택할 때 본인들이 원하면 출신민족이나 국가가 어디든 그것 역시 따지지 않고 자식들의 선택에 맡기기로 했다. 물론 자식들이 결혼을 해서 2세를 가질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자식들이 인생을 전적으로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길 바랐던 것은 그것이 자식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최선의 방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느덧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우리 자식들은 내가 바랬던 대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여부는 본인들의 판단에 달려 있겠지만 부모입장에서 바라보기에 아들, 딸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무엇보다 각자 스스로 선택한 배우자들과 가정을 꾸리고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다. 또 자신들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열심히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을 하고 있기도 하다.
유치원 다닐 때부터 경주용 자동차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었던 아들은 대학(UBC)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하고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모터스포츠 엔지니어링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경주용 차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포뮬러 원((Formula-1) 엔지니어가 되어 옥스퍼드에 있는 메르세데스 Mercedes 팀의 엔지니어로 일해왔다. 최근엔 이태리 밀라노 모데나(Modena)에 있는 페라리 (Ferrari) 팀으로 스카우트되어 영국 생활을 마치고 이태리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어릴 때부터 가장 큰 관심사였던 경주용 자동차를 만드는 엔지니어가 되었으니 직업에 만족하고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며느리와 함께 시간여유가 있을 때마다 유럽 각국의 한적한 도시들을 여행하는 게 취미다. 한때 아들이 의사가 되기를 내심 바랬던 적도 있었지만 그걸 강요하지 않았던 게 잘한 일이었다.
동유럽 세르비아 출신으로 자존감이 강하고 성취욕이 남다른 며느리 역시 나름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들과 세컨더리스쿨 그리고 대학동기인 며느리는 영국 런던에 있는 유수의 금융회사에서 근무해오다가 이번에 아들이 페라리로 스카우트돼 가면서 그 금융회사 밀라노 지사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아들과 함께 영국 옥스포드에 살면서 가장 좋아하고 자주 여행했던 나라가 이태리였는데 바로 그 이태리로 삶의 터전자체를 옮긴 것이다. 아들 며느리 모두 행복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정치와 언론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딸은 밴쿠버에서 UBC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에 있는 Northwestern 대학 언론대학원인 메딜스쿨 Medill School에서 저널리즘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대학원 졸업 후 뉴욕에 있는 블룸버그뉴스 Bloomberg News 본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다가 금융분야인 Private equity 회사로 전직하여 일하고 있다. 당시 딸이 저널리스트의 길을 포기하고 금융분야로 전직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뉴요커가 되어 멋지게 살겠다는 강한 의지 때문이었다. 즉 뉴욕 맨해튼에서 뉴요커로 살아가겠다는 확고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기자들 보수가 최상위권에 속한 블룸버그뉴스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준의 수입으로는 맨해튼 뉴요커로 살아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알게 된 것이다. 선배 선임기자들 대부분이 맨해튼이 아닌 뉴욕외곽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적지 않게 실망을 했다고 했다.
결국 기자라는 직업 자체는 좋아했지만 맨해튼에서 뉴요커로 살기가 어렵다는 현실 때문에 금융분야로 전직을 했던 것이다. 그동안 능력을 인정받아 몇 차례 스카우트과정을 거쳐 회사를 옮겨 다녔고 지금은 뉴욕에서 가까운 코네티컷에 있는 Private equity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타고난 성격이 매우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딸은 직장 외의 각종 사회활동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공화당 당원으로 정치분야 이벤트 등에 적극 참여하는가 하면 뉴욕한인금융인협회 등 각종 단체 및 모임에서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딸이 뉴욕 금융회사에서 일할 때 직장동료였던 사위는 홍콩계 미국인으로 야망이 크고 뚝심이 있는 믿음직한 사람이다. 골프실력이 수준급이고 뉴욕 금융계에 인맥이 두텁다. 지금은 보안분야 스타트업 Start-up회사의 CFO로 일하고 있다.
이처럼 아들과 딸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부모로서 더없이 고맙고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민 올 때 자식들의 인생은 전적으로 자식들 자신의 의사결정에 맡기기로 했던 아내와 나의 계획도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식들의 학업이나 직장선택 등의 과정에서 부모로서 간섭하지 않은 게 자식들이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미련이 남아있는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식들이 2세를 갖느냐, 즉 아내와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느냐의 문제이다. 원래는 손주를 보느냐 마느냐의 여부 역시 전적으로 자식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해 왔었다. 오히려 세상 돌아가는 현상으로 미루어 인류의 미래가 별로 밝지 않다는 생각에 자식들이 2세를 갖지 않기를 바라왔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내 마음이 변심하기 시작한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손주 있는 사람들이 점점 부럽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노인으로서 외로움이 밀려올 때면 '손주가 있으면 덜 외로울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마음 가득 해지고는 한다.
아들 며느리의 경우는 오래전에 양가 부모들에게 2세 자식을 갖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 바 있어서 손주를 기대하는 것은 이미 기대난망의 상황이다. 사돈 부부가 손주보기를 강력히 원해서 한때 며느리와 적지 않은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특히 아들보다 며느리의 무자식 의지가 워낙 강해 모두가 이미 포기한 상태다. 딸의 경우는 2세를 갖기는 하되 사회활동을 포기할 수없어 수년 뒤에 아이를 낳겠다는 입장이다. 딸과 사위 모두가 뜻을 같이하고 있어서 언젠가는 나도 손주를 볼 날이 있겠지만 그게 언제일지는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한편으로 생각하면 지금 내가 손주보기를 바라는 것은 내가 과한 욕심을 부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아 양육하고 뒷바라지하면서 자식들이 겪어야 하는 온갖 어려움의 크기에 비하면 내가 손주의 재롱을 보며 느끼게 될 즐거움의 크기는 너무나도 하찮은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아들과 딸 하나씩을 두고 있는 아내의 대학 선배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자식 없이 살아가는 아들 며느리가 아들 하나를 두고 있는 딸과 사위보다 훨씬 여유롭고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