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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장르 Sep 16. 2021

덩케르트(Dunkirk)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 낸 비극




정의를 앞세우는 그들의 전쟁 속에 진정한 정의를 위한 것일까. 진정 그들이 말하는 대로, 국가 수호를 위한 행위일까. 몇몇 지도자들은 국민을 위해 필수불가결의 결정이었다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국민’의 범위는 어디서부터 이며 어디까지인가. 그렇게 전체를 위해 희생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죽음으로써 수호한 가치는 죽음보다 우월한가. 그렇게 희생자들의 죽음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그리고 희생에 대한 보상이 희생과 동등한 가치를 지닐 수 있는가.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 전쟁의 결과가 대부분 유사한 형태로 귀결된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다가오지 않는가. 인간이 극한의 생존 위협을 느끼게 되었을 때, 살고 싶다는 그 절실함이 그 외의 모든 가치들을 무력화시켜버린다. 그럴듯하게 둘러대던 대의적 명분 따위가 눈에 보일 리 없다. 당장 느껴지는 생명의 위협은 인간의 시야를 좁혀온다. 이러한 상황으로 욱여넣은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보다, 희생을 강요받은 이들이 서로를 뜯어내기 바쁘다. 아니, 사실 그조차 너무나도 미세한 무언가를 위한 분노인 것이다.



“생존은 불공평한 거야. “

“아니, 생존은 공포이자 탐욕이고 본능을 농락하는 운명의 장난이지.”



우리는 하루하루 죽어간다. 누군가의 권력놀음에 희생되어야만 하는 타인은 생명은 그저 권력의 불쏘시개 따위로 전락해버렸다. 패배한 전쟁에서 살아 돌아오는 것조차 비겁함으로 치부해버리는 잔인함에서 나오는 인간의 이기심은 어디까지일까. 인간의 이기심이 만든 극단적 상황, 이것이 전쟁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수고했네.”

“살아 돌아왔을 뿐인걸요.”

“그거면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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