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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장르 Oct 19. 2021

가버나움

Capharnum, Capernaum



어른들한테 말하고 싶어요. 애들을 돌보지 않는 부모가 지긋지긋해요.
여기서 제가 얻는 게 뭐죠? 욕먹고 얻어맞고 발길질당하고 ….
자라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존중받고 사랑받고 싶었어요.
하지만 신은 그걸 바라지 않아요. 우리가 바닥에서 짓밟히길 바라죠.



누군가가 만들어 낸 서류는 그들의 존재를 끊임없이 부정했고, 그들을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던 서류가 그들을 옥죄여왔다. 서류가 없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이들은 그들의 존재 여부조차 선택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이 물려받은 것은 비인간적인 사회의 시선뿐이었다.


개개인을 인격체로 마주해야 하는 이유도, 방법도 몰랐던 부모들이 자식을 대할 때에 얼마나 잔인해지는가. 그들이 사회로부터 받았던 모욕에 무뎌졌기에 자식들에게도 무뎌지기를 강요하던 모습들. 서류로 인간의 여부를 증명하는 세상에서 그들은 얼마나 더 고독하고 고단해져야 하는가.


결국 부모의 경험은 끈질기게도 아이들을 갉아먹었다. 그들이 아이들에게 물려준 것은 가난이 아니라 그들이 받았던 수모와 치욕이었다. 지독한 연결고리의 아득한 끝을 타고 올라가 본들 누구를 탓하랴.


결국 원점이다. 누군가에겐 단지 이색적인 경험일 테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굴레였으리라. 그저 철창 너머의 삶을 관람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들을 위하고 있다고 자위하고 있는 사람들의 눈빛에서 느껴지던 동정과 연민에 온몸이 부들거린다.


잔인하게도 타인의 고통은 스스로의 안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누구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는 말. 우리는 그렇게 배워왔고, 그렇게 사고하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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