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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장르 Nov 22. 2023

기나긴 인터뷰, 그리고 트라이얼

멜버른, 호주 워킹홀리데이


6월의 멜버른은 겨울이다. 남부에 위치한 멜버른이 가장 추운 기간이기에 이 시기만 되면 이곳 사람들은 북부지역이나 따뜻한 곳으로 긴 휴가를 떠나곤 하더라. 다시 말해 이 시기는 멜버른이 전체적으로 한가로운 시기라는 의미가 된다.


최근에 함께 일하진 않았지만 오너가 같아 매장 파티 때마다 함께했던 벨라를 만났다. 벨라가 일하는 매장은 꽤나 바쁜 곳이었는데 요즘은 그곳조차 한가하다고 하더라. 그렇다면 당연하게 내가 일했던 곳도 고요하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함께 일했던 직원들이 내가 멜버른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선 연락을 해왔지만 일을 구하기 전까진 그곳을 가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돌아온 나였기에 곧 놀러 가겠다는 말과 함께 레쥬메를 열심히 돌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함께 일했던 매니저 세바스찬은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다. 만약 내가 그곳에서 일하고 싶다 하면 세비는 반드시 본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이라도 나에게 시프트를 주려 하겠지. 적어도 내가 아는 그는 그럴 사람이다. 그걸 잘 알기에 더욱이 세바에게 그런 부담감을 건네주고 싶지 않았다.


인터뷰와 트라이얼의 연속인 나날들이다. 벌써 여섯 번째 트라이얼을 마쳤고, 그중에 한 곳에서 함께 일을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트라이얼과 인터뷰는 다 다녀보기로 했다. 


프랑스 레스토랑으로 첫 트라이얼갔을때, 프랑스어로 쓰여있던 메뉴판과 영어로 적혀져 있던 포스기를 헷갈려 하던 나를 보곤 프랑스인 직원들끼리 수군댔더랬다. 그러더니 이내 나를 바깥으로 등 떠밀었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멜버른에서 최악의 트라이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트램에 몸을 싣고 멍하니 바깥 풍경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무언가가 울컥 올라왔다. 이곳에만 오면 일을 쉽게 구할 수 있을 거라 자부했기에 그랬던 걸까. 아마 그건 나의 오만이었나 보다.


두 번째 트라이얼은 꽤 먼 곳이었다. 한 시간 남짓 되는 거리를 트램을 타고 도착한 와인바에서는 영어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이유만으로 레스토랑 영업이 시작하기도 전에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그 이후의 트라이얼은 다들 나이스했고 몇몇 장소는 정말 일하고 싶은 곳이었지만 연락은 오진 않았다. 그렇게 맞이한 여섯 번째 트라이얼은 기대 없이 출발했더랬다. 아시안 음식을 팔던 곳이라 당연히 아시안 오너가 운영하는 곳이겠거니 했기에, 여기가 되더라도 다른 곳에서 연락이 온다면 일자리를 옮겨야겠단 생각을 처음부터 했더랬다. 그렇게 트라이얼이 시작됐고, 출근하는 직원들을 보니 열다섯 명 정도 되는 직원들 중 홀에 두 명, 주방에 두 명을 제외한 직원들은 모두 아시아를 제외한 다른 국적을 지니고 있었다. 오너는 호주인였고, 홀에 있던 아시안 두 명조차 이곳에서 어릴 때부터 자라온 느낌이었달까. 그랬기에 아시안 레스토랑 특유의 분위기는 없었다. 그렇게 여기서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트라이얼이 끝나고 오너가 나를 오피스로 데려갔다. 호주는, 특히 오지 잡은 트라이얼 한 후 마음에 들면 바로 오피스로 부르거나 따로 불러서 얘길 한다. 일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잘 가라고, 곧 연락 주겠다고 하며 돌려보낸다. 여러 경험을 통해 이 공식을 알고 있었기에, 이게 좋은 징조라는 걸 깨닫고선 기쁜 마음으로 따라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의자에 앉더니, 오너가 '우린 너랑 같이 일하고 싶어. 너는 우리랑 일하고 싶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라고 했다. 나 또한 이곳이 꽤 마음에 들었기에 나도 너네와 함께 일하는 게 좋다는 말을 했다. 오너가 메일 주소를 다시 보내달라 하면서 메일로 고용에 필요한 인적 사항을 요청할 거라 했다. 


그렇게 저녁 일을 구했다. 하지만 오지 잡의 경우, 처음부터 시프트를 많이 주지 않는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에 오전에 할 수 있는 일을 구해보기로 했다. 이 트라이얼 이후에 잡혀있는 바리스타 포지션 트라이얼, 그리고 호텔에 소속되어 있는 레스토랑 인터뷰의 결과를 보고선 앞으로의 워홀 생활을 함께해 주었으면 하는 곳을 정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도 고용주에게 메일이 오지 않았다. 메일을 받지 못했으니 혹시 메일을 한 번 더 보내줄 수 없냐는 문자를 보내고 나서도 묵묵부답이었다. 이렇게 나는 또 백수가 됐다. 일을 하진 않지만 매일같이 트라이얼을 다니느라 시간 맞춰 밖에 나가야만 하는 일상이 점점 지쳐왔다.


케언즈에서 멜버른으로 돌아오기 전부터, 이번엔 웨이트리스 말고 좀 더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포지션으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오전엔 바리스타로, 오후엔 바텐더로 일하는 것이 나의 이번 하반기 목표인데 바리스타는 여기서는 물론이고, 한국에서조차 해본 적이 없는 포지션이라 쉽지 않긴 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여러 카페 트라이얼을 다니며 거절당하면서 우유 스티밍 실력이 확실히 늘었다는 것.


그렇게 운 좋게 연락 온, 가장 가고 싶었던 5성급 호텔 안 레스토랑에 있는 바리스타 포지션과, 1층에 있는 카페 바리스타 포지션 면접을 동시에 보기로 했다. 이곳 레스토랑은 빅토리아에 3개밖에 없는 미슐랭 선정 레스토랑이며, 이 오너가 3층 레스토랑과 1층 카페를 모두 소유하고 있다 했다. 그리고 이 레스토랑에서 이 호텔의 조식과 룸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다 하더라. 말도 안 되게 좋은 곳인데 내가 이곳에서 무경력으로 바리스타 포지션을 잡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렇게 첫 면접을 총괄 매니저와 보게 됐다. 매니저는 시원시원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어떤 포지션을 원하냐면서 나에게 은근히 바리스타 포지션을 권했다. 아마도 레쥬메 뒷면에 넣어둔 라테아트 사진 때문인듯했다.



당연히 이곳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건 나에겐 더없이 좋은 기회임이 틀림없었다. 내가 멜버른에 다시 돌아와서 연락 온 6번의 바리스타 포지션 중 가장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 많은 곳에서 거절을 당해온 내 실력으로 그중에 가장 좋은 이곳에 들이밀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나 봐.


여러 번의 면접을 봐서 그런지 매니저와의 면접에선 떨지 않았기에 면접 분위기는 좋았다. 다행히 매니저도 나를 꽤 맘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매니저가 본인을 위해 라테 하나 만들어줄 수 있냐는 말을 했다. '그래, 근데 나 너무 떨려.'라고 말했더니 괜찮단다 떨지 말란다. 아니 어떻게 안 떨 수 있겠어.


근데 의외로 우유 스티밍이 잘 됐고, 또 의외로 커피 위에 하트 모양이 그려졌다. 매니저는 좋다면서 자신은 맛있는 커피를 만들 순 있지만 라테아트는 못한다면서 칭찬해 줬다. 그러면서 다음 면접자가 기다리고 있는데도 나를 1층으로 데려가 1층 카페에 대해 이것저것 소개해 줬다. 그러면서 '너 트라이얼 올 수 있어?'라고 물어봤다. 와이낫. 왜 안되겠어. 그래 그러면 트라이얼 날 보자면서 그렇게 면접을 마쳤다.


그리고 며칠 뒤, 트라이얼을 다녀왔다. 가기 전에 라테아트 하는 유튜브 영상을 엄청나게 봤다. 다른 거 시도하지 말고 일단 무난하게 하트만 하는 걸로 하자고, 무리하지 말고 안전하게 일단 트라이얼을 통과하는 거에 초점을 맞춰보자고 생각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이곳에 다시 갔다. 


이날은 총괄 매니저가 있었다. 바리스타 포지션으로 트라이얼 하러 왔다고, 다른 매니저가 트라이얼을 오라 했다고 하면서 트라이얼이 시작됐다. 1시간은 3층 레스토랑에서, 그리고 다른 1시간은 1층 카페에서 트라이얼을 진행하기로 했다. 3층 레스토랑이 아침 시간은 바쁘다는 얘길 들었는데 이날은 다행히 바쁘지 않았다. 너무나 다행이었다.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무사히 트라이얼이 진행됐고, 1층에서 하기로 한 트라이얼은 1층 카페가 정말 미친 듯이 바빴기 때문에 다행히도 3층 레스토랑에서 2시간 모두 보낼 수 있게 됐다.


총괄 매니저가 트라이얼이 끝날 때 즈음 나에게 따라오라 하더니 나와 함께 일하고 싶다고 했다. 나 또한 당연히 이곳에서 너희와 일하고 싶다 했고, 그는 내 메일 주소를 받아 가며 다른 매니저들과 얘기 후 메일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너무 기뻤다. 케언즈만큼 마음고생을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이 좀 조급했나 보다.


집 오는 길, 긴장이 풀렸다. 이제야 멜버른의 풍경이 다시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메일을 받고 첫 출근을 하기 전까지 안심을 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집에 와서 새로 여는 카페 온라인 면접을 보고, 내일과 내일모레에 있을 바텐더 트라이얼을 위해 칵테일 레시피좀 다시 들여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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