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 호주 워킹홀리데이
케언즈에서 멜버른으로 오던 그날, 익숙했던 공간을 떠나 비행기를 타러 가기 전까지의 붕 떠버린 시간을 채워준 이들의 흔적을 발견했다. 지겹도록 떠나고 싶었던 그 기억조차 그리울 날이 오게 될 줄이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리석은 바램은 여전히 펼쳐두었던 미련에 조금씩 말라 물들어가고 있었다.
막연히 즐거웠던 그 시절을 지나치고 있다. 그리 길지 않을 그 시기를 잘 알면서도 그저 영원하길 바랐더랬다. 머리론 알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마주할 때 즈음엔 낯설게만 느껴지는 이 감정들이 여전히 두려웠나 보다. 생각하지 않는다 해서 다가오지 않을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나는, 오늘을 지나치고 있구나.
너무나 뜨거워 바깥으로 향하기 쉽지 않았던 여름을 지나 보내고 조금 식어버린 공기가 찬찬히 나를 감싸왔다. 한편으론 이 공기가 그리웠으면서도 막상 마주하니 참 낯설게 느껴지는 모순은 아마 그 어느 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내 상황 때문에 그런 걸까.
열린 결말이 주는 모호함은 여기저기 스며들어 또 하나의 어리석음을 만들어냈다. 흩뿌려진 시간들은 또다시 바스라 들어 땅으로 돌아가겠지. 그렇게 바스러진 기억들을 밟고 나아가야만 하는 나의 모습이란.
그렇게 나는 뜨거웠던 그 여름을 보내고, 비로소 가을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