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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tle Latte 젠틀라떼 Dec 08. 2018

[퇴사일기 #8] 사람이 최고의 자산

치열한 직장에서도 사람을 얻을 수 있다

  “차장님, 저 이직하려고요.”

K사에서 S사로의 이직을 결정한 지 며칠 후, 사내 Gym에서 함께 운동을 마친 차장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사실을 전했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부하직원이 이직을 한다는 건 꽤 복잡한 감정이 드는 상황일 것이다. 특히 선임급 사원의 이직이 팀에는 부담으로 다가갈 수도 있었다. 물론 나 하나 없다고 업무가 돌아가지 않을 리 없다는 사실은 당연했다. 다만 팀원들과의 유대가 강했기 때문에 마음 한켠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원했던 이직이었지만 인간적으로 많이 가까워진 상사와 동료들과 헤어진다는 사실은 아쉬움이 컸다. 회사가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멀리 떨어진 외로움을 동료들과 달래고는 했다. 서울에서 근무할 때는 업무시간 외에 회식 정도를 함께 했다면 지방에서는 회사 외의 일상을 공유할 때가 많아졌다. 그러면서 때로는 가족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서로 가까워졌다.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직 사실을 알리고 2주가 지나 송별회가 열렸다. 정든 동료들과 작별인사를 하려니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떠나는 나를 위해 동료들은 많은 선물을 준비해줬다. 새 직장에서도 멋지게 일하라며 정장과 셔츠, 타이에 격려금까지 한아름에 들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선물을 받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맙고 미안했다. 회사생활을 헛되이 하지 않았구나라는 기쁨과 안도감도 교차했다.

  S사에서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내 뜻과 달리 바뀐 직무와 여러 힘들었던 상황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동료들 덕분이었다. 같은 팀의 신입사원들은 내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친구와도 같았고, 다른 부서의 동료 대리들은 동네 형들처럼 고민을 꺼낼 수 있는 사이가 됐다. 상사들의 끝나지 않는 회의를 기다리다 지칠 때면 함께 편의점에 가서 맥주를 테이크아웃 커피잔에 담아와 사무실에서 마시며 일하기도 했다. 그런 소소한 즐거움이라도 있어 조금 더 버틸 수 있었다. 업무 때문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어  동료애가 생길 수 있었다.

  즐거웠던 기억과 고마운 마음이 있기에 K사와 S사에서 인연을 맺은 동료들과 지금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퇴사 후에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고 술 한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회사 인근에 갈 일이 생기면 일부러 시간을 내 반가운 얼굴들과 차라도 한잔 함께하려 한다. 형식적인 말일 수도 있겠지만 어떤 일을 하든 당연히 잘 될 거란 말을 많이 건네준다. 그런 말을 들으면 없던 힘도 난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에게 그 믿음을 증명시켜 보여주고 싶은 의지가 생긴다. 참 고마운 존재다.

  어딜 가나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결국 조직을 이뤄 일하는 것은 사람이다. 어떻게든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고, 가능하면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업무도 생활도 모두 원만하게 이어갈 수 있다. 10년가량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지각색의 사람들을 만났다. 업무적으로 배우고 싶은 게 많은 상사도 있었고, 인간적으로 정말 매력적인 동료도 있었다. 반면 부하직원의 인격을 무시하는 꼰대 중의 꼰대 같은 상사도 있었고, 직장생활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이기적인 동료도 있었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 것은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이상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어느 조직에나 또라이는 있다’라는 ‘또라이 보존의  법칙’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릴 필요가 있다. 그게 스스로의 건강 정신을 위해서도 좋다. 정말 배울 게 없는 상사라면 슬플지언정 반면교사로라도 배우면 된다.

  사실 나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 감사하게도 내 깜냥 이상으로 좋은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회사에서도 평생 함께 할 내 사람을 많이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살갑게 연락을 하는 타입이 아니다 보니 소중한 인연을 놓치기도 했었다. 아쉬움도 있지만 모두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 자신을 억지로 바꾸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연락에 무심한 내게 먼저 안부를 물어주는 지인들에게 항상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대인관계가 원만하다 보니 인맥을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대한 질문도 종종 받는다. 그러나 인맥을 관리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져본 적은 없다. 인맥관리에 능한 유명인사의 책을 읽어본 적은 있는데 그가 제시하는 스킬에 왠지 모를 거부감마저 들었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맥의 측면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사람을 소중히 하는 것과 인맥을 만드는 것은 다르다.  각계각층에 걸쳐 인맥을 많이 쌓으면 비즈니스나 삶의 순간순간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나 역시 이직을 고려할 때는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을 통해 미리 정보를 파악하고, 부모님이 아프실 때는 관련된 의사에게 상담을 한다. 인맥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인맥이 목표여서는 안 된다. 인맥을 쌓으려는 목적의식을 통해 사람을 바라보면 깊은 관계까지 이어지기 어렵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그 사람 자체로 보이지 않고 명함 속 직함이나 몸에 걸친 브랜드로 보인다면 그 관계는 오래갈 수 없다. 과거 한 독서모임에서 만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해박한 지식과 깔끔한 언변에 감탄했던 적이 있었다. 사람을 몰입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토론이 끝나고 이어진 식사자리에서 그의 직업을 알 수 있었는데 전문직이나 대기업 직원일 거란 예상과 달리 일용직 건설 노동자라는 사실에 크게 놀랐었다. 낮에는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책을 읽으며 새로운 꿈을 이루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그가 처음부터 자신의 직업을 밝혔다면 토론에서 그의 주장이 다르게 들리지는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사람은 사람 그 자체여야 한다. 그 자산을 그대로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면 인맥도 자연스레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인맥을 목표로 사람을 만나지 말자.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좋은 인맥을 형성하고 싶거든 내가 먼저 매력적이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 자신은 정체되어 있으면서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과 사귀고자 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내가 알고 싶어 하는 상대방 역시 자신과 동등하거나 더 잘 나가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만큼 내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싶다면 내가 먼저 그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누구를 알고 있는 것보다 누가 나를 알고 싶어 하는지가 중요하다. 우리 사회의 매력적인 사람들, 개인적인 기준으로 손석희 앵커나 방송인 김제동과 같은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먼저 인사를 하고 악수를 건네고 싶어 하는 대상이다. 내게 인맥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스스로가 먼저 그런 매력적인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싶다.

  회사생활을 하며 여러 자산을 얻었다. 월급이라는 현실적 자산도 쌓았고, 업무역량이라는 내적 자산도 얻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이라는 가장 값진 자산을 얻었다. 흔히 회사 동료는 회사 밖에서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그건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회사 밖에서도 계속 만나고 싶은 동료들이 있다. 현재 재직 중인 A사에서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기대한다. 이것 만으로도 후회 없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직장이다. 얻을 수 있는 모든 자산을 얻으려 노력하자. 그리고 사람이 최고의 자산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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