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아픈 손가락은 아직 낫지 않았다.
할머니의 꿈에는 자식들이 자주 등장한다.
젊은 시절 사고로 요절한 큰고모를 포함해 총 5명의 자녀와 7명의 손주들이 시시때때로 꿈에 나타나는데, 최다 출연자는 막내아들(나의 막내 작은아빠)인 ‘용연이’ 이다. 용연이가 대문을 나가는 꿈, 말을 안하는 꿈, 등을 돌리고 앉아있는 꿈... 꿈속에서 용연이는 주로 특별한 말이나 행동 없이 할머니 주변을 하릴없이 맴도는 것 같다. 할머니는 그런 용연이를 애타게 부르다 눈을 뜨곤 한다.
‘용연이’ 작은 아빠는 어린 시절 한쪽 눈을 잃었다.
7세도 되기 전 동네 아이가 던진 짱돌에 정통으로 맞아 그 자리에서 안구가 파열되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눈에서 피를 흘리는 어린 용연이를 업고 병원으로 뛰었지만, 이미 사라져 버린 한쪽 눈을 되살릴 방법은 없었다. 용연이는 의술이 변변찮았던 그 시절, 멀리서도 가짜인 줄 알 수 있을 정도로 조악하게 만들어진 의안을 끼우고 성장했다. 그런 탓에 사회성이 부족하고 공부도 잘하지 못했으며, 자연스레 안정적 직업을 가져보지 못했다.
용연이 이야기를 할 때면 할머니의 눈은 유난히 반들거린다.
꿈에서 깨어난 할머니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용연이가 말을 안하더라구~’ 하며 힘이 다 빠진 손을 들어 가슴을 탁탁 친다. 한마디 말을 안 하고 멀건히 쳐다보기만 하는 게 필시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내가 작은 아빠는 멀쩡히 잘 살고 있으며, 결혼해 자식을 낳아 심지어 손주까지 봤다고 설명을 해도, 할머니는 청년 시절 한껏 움츠러든 막내아들이 지금 눈앞에 있는 듯 속을 까맣게 태웠다. 그럴 때 할머니에게는 시간감각 공간감각이 완전히 사라진 것 같다.
아픈 손가락은 끝까지 아프게 한다.
병상에 있는 노모가 걱정하지 않도록 자주 전화하고 얼굴을 비추어 주면 좋으련만, 작은 아빠는 좀처럼 병원을 찾지 않는다. 일 년에 두 번 명절 때 들러 몇 시간을 보내다 가는 것이 전부다. 그마저도 살가운 말 없이 꿈속에서처럼 멀건히 할머니를 바라보다 간다고 한다. 장애로 만들어진 폐쇄적 성격은 노인이 다 되어서도 바뀌지 않는가 보다. 한쪽 눈으로 바라본 세상 속에서 할머니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일까.
할머니는 오늘도 아픈 손가락을 그리며 시간을 보낸다.
침상에서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몸을 하고서도 할머니는 ‘용연이 걱정’ 뿐이다. 나는 용연 작은 아빠의 ‘행복한 삶’을 주제로 소설을 쓴다 생각하고 허구의 스토리를 짜내 할머니에게 들려주었다. 용연 작은 아빠가 친구들과 어울려 등산을 간 이야기, 새로 장만한 집에서 즐거운 집들이를 한 이야기... 작은 아빠는 내 소설 속에서 늘 자신감과 여유가 넘치며, 바쁜 일이 끝나면 노모를 보러 올 채비를 하고 있다. 할머니는 내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들으며 울고 웃었다. 나의 하얀 거짓말이 할머니의 아픈 손가락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져 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