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푸드파이터가 된 할머니

환자치고 다소 많이 먹는 편

by 순한 사람

할머니는 한 때 콧줄을 끼우고 있었다.

1년 전쯤 할머니는 ‘항생제 내성균’이라는 합병증을 얻어 종합병원 격리병실에 입원한 적이 있다. 말 그대로 항생제에 내성이 생겨 더 이상 항생제가 듣지 않는 병으로, 이 병을 앓고 있는 환자는 감염을 막기 위해 격리 병실에서 생활해야 하며, 가족 면회도 제한된다. 한 달간의 격리 생활 후 간신히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었는데, 다시 만난 할머니의 코에는 기다란 콧줄이 끼워져 있었다. 의사는 혹시 모를 ‘흡인성 폐렴’(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 폐렴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대수롭지 않게 설명했다.


콧줄을 달고 있는 할머니를 보는 일이 참 고역이었다.

끼니때마다 간병인이 콧줄에 부어주는 유동식이 할머니의 배를 채웠는데, 말하자면 코로 수액을 맞는 것과 같았다. ‘콧줄 식사’라고 부르긴 하지만 ‘식사’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을지조차 애매했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영양소를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씹고 맛보고 냄새 맡는 ‘식사’를 구성하는 모든 행위가 삭제된 ‘처치’에 가까웠다. 먹는 즐거움을 빼앗긴 할머니는 날이 갈수록 푸석해져만 갔다. 더 마음 아픈 일은 콧줄이 불편했는지 자꾸 잠결에 잡아 뽑는 바람에 병원에서 할머니의 손을 침대 난간에 묶어두는 것이었다.


나는 할머니를 콧줄식사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모험을 했다.

병원에서는 ‘고령자는 위험하다’며 콧줄을 유지했으면 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할머니에게 ‘먹는 즐거움’을 꼭 되찾아주고 싶었고, 우리가 분명 해낼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나는 음식물을 끈적하게 만들어주는 ‘점도 증진제’를 구입해 물부터 시도해 보기 시작했다. 점도 증진제를 넣은 물은 젤리처럼 변해 사레들리지 않고 넘기기 쉬웠다. 처음에는 물 한 숟갈, 두 숟갈이었다. 이윽고 할머니는 미음을 넘기기 시작했고, 조금씩 죽, 그리고 어느새 점도 증진제 없이 맨밥을 넘겼다. 콧줄에서 밥까지 오는데 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이젠 할머니가 너무 잘 먹어서 탈이다.

병원에서는 우리의 ‘눈부신 성과’에 놀란 듯했다. 이젠 매 끼니 할머니 앞으로 밥, 국, 반찬과 후식이 포함된 번듯한 식사가 나온다. 할머니는 병원식을 금방 먹어 치우고, 내게 떡이나 고구마 같은 ‘달달한 간식’을 달라고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주말에 수육, 삼계탕 같은 보양식을 사오면, ‘맛있다!’며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곤 한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한 이후 할머니의 얼굴색은 눈에 띄게 생기가 돌았으며, 목소리에도 힘이 생겼다.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

오늘도 할머니는 말로는 ‘이르케 살믄 뭐해? 고만 콱 죽었심 좋겄어’ 하면서 태연하게 인절미를 우물거리고 있다. 죽고 싶다면서 인절미를 이렇게 맛있게 먹다니! 내 속을 알고 있다는 듯 할머니는 ‘맛있어. 하나 더 줘. 큰 걸로’ 하며 입을 쫘~악 벌린다. 나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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