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말리는 상상력으로 대선 후보의 어머니가 되다.
“문수가 대통령에 나와?”
점심식사 중 난데없이 튀어나온 할머니의 질문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묻지 않아도 자초지종은 알 수 있었다. 할머니의 아들이자 나의 아빠 이름이 ‘김문수’인 것이다. 할머니는 필시 뉴스를 보다가 ‘김문수’ 이름이 나오자 자신의 아들이 대선에 출마한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대답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눈동자가 설렘반 걱정반으로 점점 또릿해지고 있었다. 나는 ‘아 이거 큰일 났구나’ 싶었다. 할머니는 종종 어떤 생각에 사로잡히면 누가 뭐래도 고집을 꺾지 않았고, 그 생각에 꿈과 섬망을 갖다붙여 어마어마한 세계관을 만들어 내곤 했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할머니의 '은밀하지고 열정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나와 엄마가 ‘문수랑 이름이 똑같은 다른 사람’이라고 아무리 설명하고, 심지어 아빠가 눈앞에 나타나 ‘나 아니에요’하고 타일러도 좀처럼 할머니는 ‘문수가 대통령 선거에 나왔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매일 뉴스에 나오는 문수의 소식을 기다리고, 지지율이 오르기만을 노심초사하며 빌고 있는 것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친지들에게 전화해 ‘문수를 찍으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그러면서도 주변 환자, 간병인, 간호사들에게는 ‘김문수가 내 아들이다’라고 절대 말하지 않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그놈이 떨어지면 창피해할까 봐’ 남들에겐 알리지 않았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할머니의 바람과 달리 ‘김문수 후보’의 지지율은 떨어져만 가고 있다.
할머니는 반갑지 않은 소식에 의기소침해져 입맛조차 잃어가고 있다. 동시에 마음속에는 상대 후보에 대한 은근한 미움과 원망도 싹트고 있는 것 같았다. 어렸을 때 아비 없이 고생만 하던 아들이 이제 좀 기를 펴려고 하는데, 시작부터 강적을 만났으니 어미의 속이 타들어간다며 가슴을 콩콩 쳤다. 나는 처음에 할머니의 착각이 어이없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웃어넘겼지만, 요즘은 그 과한 진지함에 걱정이 커지기 시작했다. 결과를 본 할머니가 앓아눕기라도 하는 게 아닐까...
기왕 이렇게 된 것, 투표장에 할머니를 모시고 가보려 한다.
워낙 거동이 힘들어 휠체어에 의지해서도 한 시간 이상 앉아 있기 힘든 상황이지만, 할머니는 ‘문수에게 표를 주고 싶은’ 눈치다. 나와 엄마는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할머니에게 국민으로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어쩌면 이번 선거는 할머니에게 ‘마지막 대통령 선거’이자, ‘가장 중요한 순간 선거’ 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당연한 말이지만) 결과에는 깨끗이 승복하기로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