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미용 전쟁

늙어도, 아파도 예쁜 것이 좋은 법

by 순한 사람

내 기억 속 할머니는 언제나 뽀글이 파마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대략 두 달에 한번 정도 미용실에 간다고 길을 나섰는데,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수건을 두른 머리에 거대한 실크 보자기를 동여맨 채 집에 잠깐 들러 미숫가루 한 그릇을 먹고는 다시 미용실로 가곤 했다. 나는 실크보자기 안에 롤을 빼곡하겐 만 머리칼들이 가지런히 누워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내 눈에는 매번 똑같은 뽀글이 머리였지만, 할머니는 파마를 하고 올 때마다 거울 앞에서 젖은 빗으로 머리를 넘기며 ‘잘 먹었는지’를 세심히 점검하곤 했다.


입원한 이후 할머니는 뽀글이 파마 대신 숏컷트를 하고 있다.

병원에는 한 달에 한 번 미용 봉사를 오시는 분이 계신다. 이문이 남지 않는 모든 일이 그러하듯 최단 시간 최소 노력으로 일을 하다 보니, 모든 환자들은 같은 스타일의 숏컷트 머리를 하고 있다. 사실 그것만도 감사하다. 할머니의 몸이 2~3시간씩 걸리는 파마는커녕 커트 시간조차 견디기 어려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미용사 선생님이 오시는 날엔 간병인들이 환자를 휠체어에 태워 나르느라 바쁘다. 미용 장소 앞에 환자들 대신 길게 줄을 서 있는 물병, 샤워도구, 컵 따위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얼굴이 넙데데한데 남자처럼 잘라 놓잖아~”

오늘도 할머니는 미용을 받지 않겠다고 생떼다. 앞집(건너편 침상 할머니)이랑 내일 파마를 하러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숏컷트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가 보다. 아까 가져다 놓은 할머니의 텀블러가 이미 앞쪽으로 많이 밀려가 있는데, 할머니는 절대 안 가겠다는 듯 침대 난간을 잡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번 달은 포기다.

간병인과 엄마가 어르고 타일러 봤지만 속수무책이다. 결국 우린 이번 달 미용을 포기하기로 했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후 할머니의 부드러운 은발을 쓸어 넘기며 ‘운동 열심히 해서 나랑 같이 파마하러 가자?’ 했더니, 할머니는 한결 여유로워진 표정으로 ‘그렇게 금방 되나~?’하며 딴청을 부린다. 정말 못 말리는 할머니다. 그래도 언젠가, 할머니가 2~3시간 거뜬히 휠체어를 탈 수 있게 되면 함께 미용실에 가서 파마를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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