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세 요양병원 입원 환자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다.
할머니가 손꼽아 기다리던 대선 투표일이 다가왔다.
할머니는 다소 ‘요상한 이유’로 꼭 투표를 하고 싶어 했다. 몇 주 전부터 ‘투표하러 언제 가아?’하며 보챘는데, ‘운동 열심히 해야 갈 수 있다’고 했더니 그 싫어하던 물리치료도 불평 없이 받고, 침상에 누워있을 때에도 혼자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며 도장 찍는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나 역시 할머니의 소원을 풀어주고 싶은 마음에 미리 사전투표 장소를 봐 두고, 선관위에 ‘장애인 투표 방법’을 문의까지 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5.30. D-day가 밝았다.
직장에 연차를 내고 아침 일찍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 투표장까지는 성인 걸음으로 20분, 휠체어를 말고 가면 족히 40분 이상 걸릴 거리였다. 그나마 덜 붐비고 선선한 아침 시간대를 골랐지만 9시가 넘자마자 찌는듯한 더위가 시작됐다. 나는 서둘러 할머니에게 옷을 입히고 소변 주머니를 조끼 속에 숨긴 뒤 휠체어에 앉혔다. 출발을 앞둔 할머니의 표정에는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나 역시 별 일도 아닌데 괜스레 떨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러 가자!!”하며 힘차게 휠체어를 밀었다. 할머니는 가는 길에도 연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투표소로 가는 길은 다소 멀고 험했다.
보도블록은 휠체어에 적합하지 않은 둔덕과 경사로 가득했으며, 횡단보도 신호도 너무 짧았다. 출발한 지 30분쯤 지나자 나는 숨이 턱까지 차고 등줄기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힘들기는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10분 이상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 ‘허리 아프다’며 투정을 부리곤 했는데, 오늘은 30분 이상을 이동했는데도 꾹 참고 있었다. 겨우 투표소에 도착하니, 할머니는 드디어 왔다는 듯 불편한 손을 들어 휘저으며 ‘박수 박수!!’를 외쳤다.
투표소에서도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할머니는 소원을 풀었다.
신분 확인, 자필 서명 등 절차 중 어느 것 하나 장애인 투표자에게 수월하지 않았지만, 현장 진행요원과 상의해서 헤쳐 나갔다. 기표도 할머니가 손이 불편한 점이 인정돼 내가 기표소 안에 들어가 보조를 할 수 있었다. 투표를 마치고 나오니, 안도감과 뿌듯함에 눈물까지 찔끔 나왔다. 실감이 안 났다. 병원 간호사들도, 간병인도, 심지어 가족들도 무리라고 말렸던 일을 할머니와 내가 해낸 것이다! 어쩌면 '생애 마지막 투표’를 마친 할머니의 얼굴은 긴장감이 사라져서 인지 한층 늠름해 보였다.
할머니를 다시 침상에 눕히고 나오는 길에 약국에 들러 박카스 한 병을 마셨다.
약국 귀퉁이 의자에 앉아 한숨 돌리면서 아침에 있었던 일들을 되새겼다. 할머니와 함께 다니면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상황을 마주하고, 혼자서는 받아보지 못했던 주면 사람들의 동정과 혐오의 시선도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내 마음속에는 그런 것들에 개의치 않는 강인함과 여유로움도 자라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더 어렵고 곤란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할머니랑 같이 헤쳐 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