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온 환자가 병실을 뒤집어 놓다.
“여사님~ 신규 환자 ‘야간 행동’ 좀 있어요오~?”
수간호사의 통보에 간병인이 움찔했다. 며칠 전 6층 병실 리모델링으로 환자들을 분산배치 한다는 공지를 보았는데, 이 병실에도 마침 빈 침상이 있어 한 명을 배치하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야간 행동’? 말 그대로 ‘야간’에 ‘행동’을 한다는 말인 것 같은데,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들이 대체 어떤 ‘행동’을 얼마나 한다는 것인지 얼핏 잘 이해되지 않았다. 다만, 부정적인 단어를 중립적이고 학문적인 느낌으로 바꿔 말하는 의료인들의 평소 행동에 비춰봤을 때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임은 분명했다.
임시 배치된 환자분은 당뇨ㆍ파킨슨에 무릎 골절이 겹쳤다 한다.
곧이어 환자분을 태운 침대가 들어왔는데, 길쭉한 몸을 달팽이처럼 돌돌 말고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쓰고 있었다. 간호사들이 사라지자 이불 밖으로 얼굴을 슬쩍 내밀었는데, 아직 60대 후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팽팽한 피부에 풍성한 머리칼을 갖고 계셨고, 이와 어울리지 않게 치아는 완전히 빠져 합죽이가 된 상태였다. 환자분은 어딘가가 불편한 듯 심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계속 중얼거렸는데, 아무도 이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이분이 전직 운동선수였다는 것이다.
간호사의 말로는 오랜 병원생활 탓에 몸이 여위고 굽어져 있으나, 운동선수 출신으로 워낙 힘이 좋아 간병인 혼자 ‘행동’을 제어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그 순간 환자분이 누운 상태에서 몸을 수평으로 돌리며 손발을 휘젓기 시작했는데, 침상이 삐걱대며 양옆으로 요동칠 정도였다. 무언가 화가 난 게 분명했다. 간호사 2~3명이 긴급히 환자분을 진정시키려 애썼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나중에는 휴지, 기저귀 등을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는 바람에 우리 할머니에게까지 기저귀가 날아올 지경이었다. 결국 낙상 방지를 위해 손발을 잠시 묶어두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보니 간밤에 간병인과 병실 사람들 모두 전쟁을 치른 듯했다.
오늘도 점심시간이 되어 병실을 찾았는데, 할머니는 옆 침상을 힐끗 보더니 “아유~ 정씨 아줌마(할머니는 환자분을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가 밤에 대단했오~~”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밤 새 알 수 없는 울부짖음과 몸부림으로 모두 한 잠도 자지 못했다는 것이다. 간호사가 말한 ‘야간 행동’이란 것이 생각보다 거칠었던 모양이다. 대각선에 할머니의 증언으로는 침상을 '부숴버릴' 정도의 괴력이었다 한다. 간병인은 극심한 피로 탓인지 한쪽 구석에서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정씨 아주머니 본인도 지쳐 잠들어 있었다. 당분간 밤마다 병실에서 소동이 벌어질 태세였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새로 온 환자분의 일그러진 얼굴이 떠올랐다.
할머니가 잠을 설친 것은 걱정이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크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대신 남들보다 월등한 신체 능력으로 운동장을 마음껏 누볐을 정씨 아주머니의 젊은 시절을 상상해 봤다. 경기장에서의 긴장감, 속도, 바람, 박수갈채... 그 모든 것에 대한 상실과 그리움이 너무나 큰 고통으로 다가왔나 보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운동선수에게 파킨슨이라니 너무 가혹하다. 부디 그 몹쓸 질병의 치료제가 개발되어 병세가 호전되길, 그리고 그때까지는 마음의 고통을 내려놓으시길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