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그 고약한 놈을 몰아냈다.
그간 할머니와 나의 고생을 이야기하자면 눈물이 날 지경이다.
작년 초 할머니가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당시 꼬리뼈 부위에서 자라나기 시작한 욕창은 요양병원으로 전원할 때 즈음 흡사 파충류의 입처럼 큰 구멍을 벌리고 있었다. 구멍은 보기에도 섬뜻할 정도로 깊고 붉었다. 할머니는 매일 욕창 부위를 드레싱할 때 마다 강한 쓰라림에 ‘아이고~ 아이고~’하며 곡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껏 일그러져 주름으로 뒤덮여버린 할머니의 얼굴을 잡고 어쩔줄을 몰랐다.
그러기를 벌써 일년 반이다.
체위 변경, 도넛 베개, 삼각 쿠션, 마사지 등 써보지 않은 방법이 없다. 세포가 눌려 죽은 분위에 혈액이 돌고 살이 돋아나려면 압력을 줄여줘야 했다. 간호사는 욕창이 워낙 다루기 어려운 병인지라 반나절만 체위 변경을 소홀히 해도 주변으로 번진다고 했다. 모로 누우면 어깨가 눌려 아파하는 할머니를 위해 자주 어깨를 주물러 주고, 밥을 먹을때에는 도넛 베개에 앉혀 상처 부위가 닿지 않도록 해 주었다. 거즈로 메워놓은 구멍이 불편해 ‘뭐가 배기는 것 같아~’ 할 때는 빈 손을 엉덩이 밑에 수 없이 넣었다 뺏다 해주었다.
새 살은 아주 조금씩, 천천히 돋아났다.
94세 노인에게 세포분열이란 무척 더디고도 고된 일이었들 터이다. 처음에는 구멍 저 안쪽에서 고름이 말라가더니, 몇달 지나자 꽃잎처럼 분홍빛 살이 조금씩 돋아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도 꽃잎이 자라나도 또 다른 꽃잎이 생기기까지 수 주, 수 개월이 걸렸다. 우리에겐 인내심이 필요했다. 적어도 악화되진 않고 있으니까.
어느 날, 마법처럼 구멍이 메워지고 그 위를 거미줄 같은 조직들이 덮어가고 있었다.
상처 부위를 통통 두드리니, 할머니는 이전처럼 아파하기는 커녕 ‘아이구 시원허다~’며 좋아했다. 그 이후 상처가 아물면서 간지러운 듯 계속 엉덩이를 두드려달라고 했다. 이불에 쓸리기만 해도 아파하던 일년 전에 비하면 기적같은 일이었다. ‘할머니 다 나았어!!! 이제 구멍 없어!!!’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까지 찔끔 났다.
간호사는 ’이제 드레싱은 더 안해도 되겠어요~‘하며 우리에게 졸업장을 주었다.
자축 세레머니로 할머니의 매끈해진 엉덩이를 팡팡 두드렸다. 할머니는 ’어이구 시원허다 어이구 시원허다‘ 하며 맞장구를 쳤다. 지난 날들은 우리에게 단순한 질병 치료를 넘어 삶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94세라는 나이는 어쩔 수 없이 죽음과 맞닿아 있고, 그들의 삶은 종종 ’죽어가는 과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도 극복과 치유가 있고, 삶의 희망이 돋아난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용기를 잃지만 않는다면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 해결책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