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마는 못해줘도 예쁘게는 해줬다.
병실에 들어가니 '이발기'를 손에 든 간병인과 할머니가 또 실랑이 중이다.
"둥그렇게 깎아야지 얼굴이 달덩이가티! 기래야 강남 멋쟁이 되지"
"싫어! 나 길러서 파마할거야~ 안해 안해~"
아무래도 간병인이 양갈래로 묶어놓은 할머니 머리를 깎으려 든 모양이다. 할머니는 병원에서 '머리 깎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얼마 전까지는 동네 미용사가 봉사활동차 가끔씩 병원에 들러 이발을 해 줬지만, 이제 그마저도 중단되어 미용 기술이 변변찮은 간병인이 직접 깎아준다고 한다. 옆 병상에 이미 머리가 깎인 할머니들을 보니 할머니가 이발을 싫어할 만도 했다. 머리가 베개에 눌리지 않도록 뒤통수는 두피가 보이게 밀어놓았으며, 윗머리도 좌우 대칭이나 가마 위치를 무시하고 깎아 듬성듬성 짧은 것이 도깨비 머리 같았다.
격렬히 저항하는 할머니를 진정시키고, 간병인과 일단 '다음에 깎는 것'으로 합의 봤다.
할머니는 '이겼다'는 듯 잘 올라가지도 않는 손으로 양갈래 머리끝을 겨우 잡고는 '난 내일 파마하러 갈 거야'하며 배시시 웃었다. 허리가 아파 휠체어에 30분 이상 앉아있지도 못하는 몸으로 어떻게 파마를 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을 '알았어. 운동 열심히 하면 미용실 데려갈게!' 하고 달랬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한 번 휠체어에 태워 데려가 볼까' '머리 마는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하며 갈팡질팡 했다.
다음날 아침, 하루 만에 도깨비 머리로 변한 할머니를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악!!! 이게 무슨 일이야!!!!!'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겨우 참고 간병인을 몰래 쓱 흘겨보았다. 아무래도 어제저녁 아무도 없을 때 사달이 난 모양이다. 간병인은 냉큼 오더니 '할머니 얼굴이 달덩이가티~'하면서 할머니 머리를 만족스러운 듯 쓰다듬었다. 할머니가 '머리가 남자 같애~'하며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는데, 내가 봐도 남자 머리 같은 데다 머리가 짧아지면서 퉁퉁한 얼굴이 더 커 보이는 것도 같아 도저히 좋은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병원에서 까다롭게 굴긴 싫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취향이나 미적 감각이란 것이 있지 않은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액세서리 집에 들러 진분홍색 꽃이 달린 머리핀 2개를 샀다.
머리 때문에 상심했을 할머니와, 덩달아 부아가 난 내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너무 짧아서 위로 뼏쳐있는 머리에 꽃핀이라도 꽂아주면 얼굴이 좀 살아날 것 같았다. 뜨개질로 만들어 놓은 두 개의 진분홍꽃은 화사해고 포근해 보였다.
할머니는 내가 사준 머리핀을 꽤나 마음에 들어 했다.
"이걸 허구(하고) 가니까 사람들이 좋아빈대~"
며칠 사이 꽃핀은 할머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아마도 간호사, 물리치료사들이 짧은 머리에 꽃핀을 얹어놓은 할머니를 귀엽게 여겨 너도나도 한 마디씩 하며 웃었나 보다. 할머니는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꽃핀을 굽어진 손끝으로 만지작거렸다. 머리가 조금 자라면 안정적으로 머리칼이 잡힐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어린아이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꽃핀 하나로 신이 난 할머니를 보며, 나도 어린 시절로 돌아가 저항 없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