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의 효과는 더디지만, 분명히 나타난다.
작년, 할머니는 사실상 사지마비 상태로 중환자실을 나왔다.
시작은 골반뼈 골절로 인한 와상이었으나, 뼈가 붙는 과정에서 여러 합병증이 겹쳐 중환자실까지 가게 된 할머니는 한 달 여를 격리병실에서 홀로 누워 있어야만 했다. 입원 기간 쓰지 않았던 팔다리는 굳을 대로 굳은 데다 안쪽으로 깊이 말려들어 있어, 마치 굽은 소나무 가지를 보는 듯했다. 당시 할머니는 이불속으로 들이민 내 손을 잡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얼굴이 가려울 때, 몸 어딘가가 불편할 때 속수무책으로 견딜 수밖에 없는 답답한 상황에 처한 할머니를 보는 것이 내게는 여간 가슴 아픈 일이 아니었다.
요양병원으로 전원 후 욕창에 차도가 있자 적극적인 재활치료를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워낙 고령이시라서’ 재활 치료를 육체적으로 힘들어하실 수 있다며 은근히 만류하는 투였지만, 우리 가족은 포기할 수 없었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몸을 움직이게 하고 싶었고, 계속하다 보면 분명히 나아질 구석이 있지 않겠나 싶었다. 적어도 얼굴이 가려울 때 긁을 수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훨씬 살만해지지 않겠는가. 이렇게 해서 매일 저녁식사 후 5시 반, 30분간의 재활치료 일정이 잡혔다.
엄살이 심한 할머니는 ‘운동하기 싫다’며 매일 떼를 썼다.
시작도 전에 “나 아퍼서 안가!”하며 버티는가 하면, “혼자서도 운동 잘해~~”하며 침상에 누운 채 엉덩이를 씰룩씰룩 거리기도 했다. 다행히 넉살 좋은 치료사를 만나 할머니와 주거니 받거니 농담하며 매일의 과제를 해 나갔다. 처음에는 굽어진 사지를 펴는 것부터, 그다음엔 손을 앞으로 뻗는 연습, 그리고 배와 허리에 힘 키우기... 손 하나를 뻗는 데만도 몇 달이 걸렸고, 그 후에도 어느 것 하나 녹록지 않았지만, 마라톤을 뛰는 심정으로 인내심을 가졌다.
어느 날, 엄마에게서 사진 한 장이 날아왔다.
사진 속 할머니는 치료대에 걸터앉아 있긴 했지만, 분명 두 발로 땅을 딛고 목과 허리를 세우고 있었다. 1년여 만에 느끼는 발의 감촉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 일어선 건가?' 하는 표정이었다. 드디어 몸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을 보고 웃음과 함께 기쁨의 눈물이 터졌다. 이게 대체 얼마만의 일인가. 콧줄, 욕창으로 고생했던 지난날과 지난했던 재활치료 과정이 눈앞에 스쳐갔다.
앞으로도 많은 시련이 있겠지만, 지금처럼 앞만 보고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갈 거다.
간병을 시작한 후 나는 목표보다는 과정을, 미래보다 현재를 바라보는 삶의 자세를 체득해 나가고 있다. 할머니가 영영 걷지 못할 수도, 갑자기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에게 재활을 그만 둘 이유가 되지 않는다. 끝은 어차피 정해져 있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면 그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