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아침

잘 자고, 잘 먹은 뒤 기분 좋은 노곤함에 취하다.

by 순한 사람

간병을 위해 9월부터 일을 잠시 중단했다.

그간 일과 간병을 병행하느라 지칠 대로 지쳤던 나에게도 휴식과 회복의 시간이 필요했던지라, 과감히 일을 중단하고 간병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일’과 ‘나중에 할 수 있는 일’을 따져본다면, 당연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됐든 이로 인해 나는 ‘종종거리지 않아도 될’ 만큼의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하루 6시간 이상을 할머니 곁에서 보내며 더 잘 돌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도 되었다.



‘병원의 아침’은 새로운 볼거리였다.

환자들의 모두 자고 있는 새벽 6시에도 병원 관계자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7시부터 아침 배식이 시작되는 데다, 밤 근무조와 낮 근무조의 교대도 그 시간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는 양은 적지만 쌀밥과 소화하기 변한 반찬들 위주로 탄단지를 고루 갖춰 나왔다. 10여 년을 진한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대신해 온 나의 아침 식사에 비하면 영양이 과하다 싶을 지경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맛있게 식사를 하는 환자들도 있는 반면, 잠이 덜 깨 간병인의 채근에도 몇 술 뜨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오늘 할머니는 밥그릇의 절반 이상을 비우고도 내가 따로 가져온 후식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아침에 믹스커피를 즐겨 마셨던 할머니를 위해 요즘은 커피와 함께 먹을 빵, 떡, 과일 등을 후식으로 가져와 챙겨준다. 아침부터 어디에서 식욕이 돋는지, ‘아!’ 하고 입을 딱딱 벌리며 조금씩 떼어주는 후식을 잘도 받아먹는다. 후식까지 마친 할머니는 ‘이제 든든허다’며 ‘노래 틀어줘!’하고 조른다. 이렇게 아침마다 내 노트북으로 미스터 트롯ㆍ가요무대ㆍ전국 노래자랑을 보는 것도 할머니의 빼먹을 수 없는 일과가 되었다.


노래를 듣던 할머니는 창가로 들어오는 가을 햇살아래 잠이 들었다.

손으로 박자를 맞춰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배앳~ 사~ 공’을 흥얼거리던 할머니는 노곤한 듯 눈을 몇 차례 끔벅거리더니 쿨~ 하고 잠들어 버렸다. 편안한 몸, 부른 배와 따스한 햇살 속에 단꿈을 꾸고 있으리라. 나는 조용히 노트북을 끄고 할머니의 얼굴을 한참 바라봤다. 언젠간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될 한때 내 세상의 전부였던 사람의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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