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할머니의 꿈

간밤에도 다른 세계에서 홀로 헤매었다 보다.

by 순한 사람

할머니는 내가 어릴 적부터 꿈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할머니는 내 옆에 누운 채 꿈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마치 실제 있었던 일처럼 들려줬다. 할머니 품속에서 듣는 환상적인 이야기들은 때로는 흥미진진했고 때로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오싹했다.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 오래전에 죽은 딸(나은 큰 고모)이 있었다거나, 집에 돌아와 보니 자식들이 모두 술을 먹고 산송장이 되어 있었다거나, 어린 나를 유모차에 태워 시장에 갔는데 유모차가 고장 나 혼이 났다는 등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할머니의 무덤덤한 표정과 허공을 이리저리 응시하는 까만 눈이 이야기에 몰입감을 더해주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할머니의 꿈은 주로 ‘무언가를 잃는’ 내용이었다.

자식이 죽거나 떠나는 꿈, 물건을 잃어버리는 꿈, 먹을 것을 빼앗기는 꿈... 할머니는 자신의 좁고 보잘것없는 세상 속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끊임없이 잃어버렸고, 잃은 것을 찾으려 목 놓아 부르고 돌아다녔다. 할머니의 가슴 깊은 곳엔 대체 얼마만큼 큰 불안이 자리 잡고 있는 걸까?


오늘 아침에도 할머니는 꿈의 잔상 속에서 떨고 있었다.

평소보다 10분 정도 늦었을 뿐인데 할머니는 침대에 누운 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꿈에서 내가 자동차 사고로 큰 부상을 입어 병원에 실려 갔다는 것이다. 내가 죽었으면 할머니도 물에 빠져 콱 죽으려고 했단다. 눈앞에 손녀가 멀쩡히 나타났음에도 할머니는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10분쯤 달래니 겨우 진정이 되었는지 안색이 돌아오더니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꿈속에서도 불안하지 않게 같이 있어주고 싶다.

오늘 밤만은 할머니가 버려지거나 헤매는 꿈 말고 신나고 행복한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봄 햇살을 받으며 꽃밭에서 뛰어놀거나, 등에 날개를 달고 훨훨 날며 마음껏 세상 구경 했으면... 거기는 아픔도 불편함도 외로움도 없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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