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위기는 소리 없이 온다.

'폐렴'이라는 무서운 병이 할머니를 덮치다

by 순한 사람

아침공기가 싸늘하던 날, 할머니는 그저 조금 졸려 보였다.

아침밥을 먹으면서도 눈이 게슴츠레 감겨 있었고, 목소리 크기도 평소보다 작았다. 밥알을 씹는 턱의 움직임도 반 박자 정도 느렸다. 나는 ‘잠이 덜 깼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는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침상을 눕혔다. 할머니는 무거운 눈으로 나를 한번 쓱 올려다보더니 조용히 아침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정오를 지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잠든 할머니의 몸에서 슬슬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불속에 손을 넣어보니 몸에서 난 열로 후끈후끈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배도 불규칙하게 들썩였다. ‘할머니! 할머니!’하며 흔들어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제야 내 머릿속에 비상등이 들어왔다. 다급히 간호사실에 체크를 요청했다.


검사 결과 노인에게 치명적이라는 ‘폐렴’이었다.

X-레이, 혈액, 소변검사가 빠르게 진행됐고, 할머니 코에는 산소 발생기가 끼워졌다. 산소 포화도가 85(정상수치는 95~100이라고 한다)까지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검사 결과는 '폐렴'이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음식? 외출? 감기에 걸렸던 것일까? 음식물을 잘못 넘겨 폐가 감염됐을까? 아무리 되짚어봐도 딱 마음에 걸리는 원인이 없었다. 면역력이 약한 노인에게 폐렴은 패혈증이나 심하면 사망까지 이르게 되는 무서운 병이다. 주치의는 곧바로 항생제 치료에 들어갔다.


하루 3번의 항생제 주사와 24시간 산소발생기 착용은 참 고역이었다.

링거 형태로 투약되는 항생제는 다 들어가는데 30분 정도가 걸리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약이 들어갈 때마다 부작용으로 두통과 어지럼증ㆍ울렁거림을 호소했다. 잠시 눈을 떠 주변을 둘러보다가도 질끈 감으며 낮은 신음을 내보냈다. 밤에는 호스를 귀에 걸어 끼우는 산소발생기가 답답하다며 자꾸 빼려 했다. 나는 힘들어하는 할머니를 주무르고 달래며 열과 염증 수치가 빨리 떨어지기만을 기도 했다.


생각지 못한 위기에 우리 가족은 적잖이 당황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활력 넘치는 할머니를 보며 우리는 ‘이제 컨디션이 안정기에 접어든 것 같다’, ‘조금 더 회복되면 집으로 모시고 오자’며 희망적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폐렴이라니... 건물 20층에서 지하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지금 할머니의 몸에는 병마와 싸울 기력이 남아있는 것일까? 이대로 이별이라면 우리는 할머니를 보내줄 준비가 되어 있나? 할머니에게 더 고통스러운 처치가 필요하다면 동의해야 할까? 이 터널의 끝은 출구일까 낭떠러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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