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더디지만, 분명 회복하고 있다.
폐렴과 정신없이 싸우다 보니 한 해를 넘겼다.
나는 시끌벅적한 송년회도, 크리스마스 트리도, 연말 시상식 시청도 없이 차분히 연말을 보내고 2026년 새해를 맞았다. 할머니와 나는 사이좋게 한 살씩 더 먹어 95세, 42세가 되었다. 병원에서 지내다 보면 세월 가는 줄을 모른다. 병실은 온도, 습도, 조도까지 늘 일정하고,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일들이 일어나며 같은 사람들이 눈앞을 지나다닌다. 마치 무한 루프에 빠진 것 같다. 간병사가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을 직~ 찢는 것을 보고야 2026년 새해가 밝았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할머니는 염증 수치가 좋아져 항생제 투약을 중단했다.
두 번째 채혈 검사에서 다행히 수치가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산소포화도도 90% 이상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코에 끼웠던 산소발생기도 뗐다. 아직도 할머니는 평소보다 기력이 없고 어지럼증과 울렁거림 증상을 호소하고 있지만, 이런 증상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좋아질 것이라 한다. 연명 치료까지 거론하던 의사도 오늘 회진에선 별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식사를 잘하라'고만 당부했다. 긴장했던 나도 한 시름을 놓고 조금씩 마음의 여유를 되찾게 되었다.
할머니는 의사의 걱정과 달리 아픈 와중에도 식욕만큼은 여전한 것 같다.
아침에 도착하면 간병사가 채워준 턱받이를 한 채 '왔어?' 하며 댕그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끼니때마다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으며, 아침과 점심 사이에는 제일 좋아하는 믹스커피와 함께 간식으로 달달한 떡 몇 조각을 먹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요즈음 '흑임자 인절미'를 가장 좋아하는데, 매일 먹어도 처음 먹는 것처럼 '맛있다!'라고 감탄하며 먹는 것이 귀엽다. 아마도 이런 왕성한 식욕이 회복에 도움이 되고 있지 않나 혼자 생각해 본다. 참 다행한 일이다.
병원을 나오며 새해에는 ‘의연해지자’고 다짐했다.
되돌아보니 나는 갑작스러운 폐렴 소식에 멘붕이 왔었던 것 같다. 일상의 루틴을 집어던지고 할머니 곁에서 매일 매시간 전전긍긍 했다. 자연히 심신이 지쳐가고 주변 사람들에게 예민하게 대했다. 하지만 이번 고비를 잘 넘기더라도 앞으로 우리에게 또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지 않는가. 다음번엔 조금 더 의연해지자. 그리고 할머니 우리 올해도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