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환자에겐 충치도 중병이다.
“아 야야야....”
평소처럼 밥을 먹던 할머니가 갑자기 앓는 소리를 하더니 씹기를 멈췄다..
입안을 들여다보니 오른쪽 위 잇몸에 거대한 염증이 생겨 있는 것이 아닌가! 그간 어금니 하나가 깨져 있는 것을 방치했더니 충치가 생겨 잇몸 염증으로 번져버린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아프고 불편한 듯 연신 혀로 염증 부위를 핥으려 했다.
치과 예약을 잡는 일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난 막연하게 치과들이 휠체어 환자를 눕히고 치료할 방법을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세상에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며, 그들이 평생 치과 진료를 받지 않을 리도 만무하지 않는가! 그런데, 당혹스럽게도 그들을 별다른 방법을 알고 있지 않았다.
치과들은 일단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시다는 말만 듣고도 진료를 거부했다. 환자를 진료 의자에 앉히다가 다치거나, 치료 과정에서 액체 등이 기도로 넘어가는 등 위험한 상황이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4~5군데 거절당한 끝에 겨우 ‘보호자가 진료 의자에 직접 앉히는 조건으로’ 예약을 해 주겠다는 병원을 찾았다.
준비 과정은 험난했지만 막상 진료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끝났다.
우리는 엄마, 아빠, 나까지 셋이 달려들어 밀고 당긴 끝에 할머니를 겨우 진료의자에 앉혔다. 의사는 할머니의 입 안을 살피더니, '충치가 있으나 연결된 신경이 이미 죽어 있어 큰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으며, 잇몸 염증만 해결하면 될 것 같다'는 소견을 냈다. 고령자들의 경우 자연적으로 신경이 죽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염증이 가라앉으면 지금 느끼는 불편함은 많이 좋아질 것이라 한다. 할머니 간병을 시작한 이유로 병원에서 그때그때 말은 다르지만 결론적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이대로 사시라’라는 의미의 소견을 듣는 경우가 많아졌다. 당장 발치나 신경치료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다행이지만 너도나도 '시간이 얼마 없다'라고 확인해 주는 것 같아 한편으론 조금 씁쓸했다.
아쉬운 대로 약국에서 ‘헥사메딘’이라는 가글액과 치실도 사 왔다.
이제부턴 조금 더 양치에 신경 쓰려한다. 할머니에게도 ‘양치 열심히 안 하면 병원 가서 이 뽑아야 된다’고 단단히 일러주었다. 그랬더니 오늘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눈을 댕그랗게 뜨고 손녀 보란 듯 혼자 열심히 양치질을 하고 있다. 실수로 한번 꿀꺽 하긴 했지만 가글도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 이번 소동도.. 또 이렇게 무사히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