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고향 생각

어젯밤 할머니는 어린 시절로 돌아갔었나 보다.

by 순한 사람

오늘은 할머니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어있다.

자면서 내내 울었는지 눈가부터 귀까지 길고 하얀 가루가 붙어있고, 눈곱이 엉겨있는 눈에서는 아직도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할머니! 할머니!’하고 부르며 어깨를 흔들었다. 할머니는 아직 꿈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 허공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소리 없이 울부짖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가 돌아간 것 같아...”

겨우 진정을 시키니 할머니는 다 죽어가는 소리로 꿈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나에게는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 심지어 내 아빠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는데...? 난감한 일이었다.


할머니가 드문드문 들려준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이렇다. 할머니의 아버지는 나무꾼이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는 엄마 아빠, 언니, 남동생 둘과 춘천 인근의 한 산골에서 살았는데, 아버지가 나무를 베다 팔아 번 돈에 여섯 입이 달려있었으므로 할머니는 늘 배를 곯아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는 젊어서부터 술독에 빠져 나무 하기를 이런저런 핑계로 게을리했다. 어느 날인가 툇마루에서 미적거리던 아버지가 겨우 몸을 일으켜 지게를 지고 나갔는데, 나무 판 돈으로 술을 거나하게 마신 뒤 방울만 한 쌀주머니를 지게 끝에 매달고 왔더란다. 여섯 식구는 그 쌀알에 물을 잔뜩 붓고 풀죽을 쑤어 빈 속을 달랬다. 그런데 그날 할머니는 며칠 만에 들어간 곡기에 속이 뒤집어져 한두 숟갈 들어간 풀죽마저 마당에 토해냈다고 한다.




할머니는 배곯던 춘천으로 가고 싶다고 한다.

정신이 든 할머니는 갑자기 ‘나 좀 춘천으로 데려다줘’ 하며 나에게 조르기 시작했다. 춘천에 돌아가 포장마차를 차리고 혼자 빈대떡 장사라도 하면서 돈을 벌겠단다. 할머니의 머릿속엔 어떤 시간 어떤 상황이 펼쳐져 있는 걸까. 나는 거기 어디쯤 자리하고 있는 걸까. 지금은 아무도 없는 춘천에 데려가 줄 수 없는 나는 그저 할머니를 달래고 또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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