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고목(古木)이 된 할머니

그저 가만히 살아낼 뿐

by 순한 사람

돌이켜보면 할머니는 아주 천천히 늙은 나무가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할머니는 신경통으로 한쪽 다리를 절었다. 초등학교 시절 수업을 마치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면, 교문 뒤편에 엉거주춤 서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를 보면 늘 말없이 책가방을 넘겨받아 어깨에 축 걸치고는 발뒤꿈치를 꿍꿍 찌으며 집까지 앞서 걷곤 했다. 어린 시절엔 따라가기 벅찼던 할머니의 걸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급격히 느려져 갔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는 그 배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내가 철이 들 때쯤엔 정말 늙은 나무처럼 더 이상 움직이지도 자라지도 않은 채 집 한구석에 박혀 버렸다.


고목이 된 할머니는 손녀의 든든한 그늘이 되어주었다.

고등학교 시절, 내 유일한 낙은 늦은 하교 후 할머니 방에 들러 잠시 노닥거리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요에 모로 누운 채 팔을 뻗어 피곤에 절은 내 얼굴을, 머리카락을 만져보고 안부를 확인하곤 했다. 뺨에 닿은 할머니의 손은 나무껍질처럼 거칠고 굽어져 있었지만, 세상 무엇보다 따뜻했다. 성적이 부진해도,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해도 할머니는 그딴 건 모르니 내가 밥만 잘 먹으면 만족이라 했다.


나무는 세월에 저항하지도 불평하지도 않는다.

한 때 왕성하게 가지를 뻗어내고 계절마다 생기발랄한 잎사귀와 꽃봉오리를 자랑하던 나무도, 세월이 감에 따라 굳어지고 쪼그라들어 옹이와 나이테만 얻어가는 때가 온다. 그래도 늙은 나무는 말없이 매일 뜨는 태양, 내리는 비,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주어진 생을 살아낸다. 때로는 아직 굳지 않은 곁가지를 열심히 움직여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뿌리 끝에 느껴지는 수분을 빨아들여 목마름을 해소하며, 몸 한쪽이 썩어 들어가면 미련 없이 떨궈낸다. 그렇게 때가 되어 사목(死木)이 되면 땅에 양분을 공급하고 곤충과 애벌레들의 집이 되어주며 자연으로 돌아간다. 본질적으로 나무의 생도 사람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오늘도 나의 고목은 묵묵히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시간에 쫓겨 황급히 병원을 나왔다가 소지품을 두고 온 것이 생각나 다시 병실로 돌아왔는데, 할머니는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보며 아직 굳지 않은 한쪽 손을 열심히 쥐었다 폈다 하고 있었다. 앙상하고 맥 없는 팔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담담하게 계속해 나갔다. 그 모습이 너무 먹먹해 차마 부르지도 다가가지도 못한 채 한동안 병실 문간에 서서 바라만 보았다. 할머니는 이윽고 고개를 돌리더니 5분 만에 되돌아온 손녀를 ‘옴마나~ 왜 벌써 와?’하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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