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이 분주해졌다.
매주 토요일은 ‘목욕하는 날’이다.
주말 늦잠 자는 나의 버릇을 고쳐놓겠다는 듯 병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있는 할머니의 목욕시간을 ‘토요일 아침 9시’로 잡아 주었다. 고의가 아니라면 아마도 한정된 샤워실을 돌아가면서 사용하려니 다소 이른 시간에 우리를 배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리라. 특히, 토요일은 목욕보조를 오는 가족들이 선호하는 요일이어서 30분 단위로 시간이 빽빽하게 배정되어 있다. 즉, 조금만 늦어도 순서를 놓칠 수 있다는 말이다. 별 수 없이 한 주의 피로와 금요일 밤의 숙취가 남아 축 쳐저있는 몸을 일으켜 세워 병원으로 출발한다.
일주일에 한 번의 목욕이 부족한 줄 알았는데, 거의 적당한 듯하다.
당초 할머니가 입원할 요양병원을 알아볼 때 나는 오직 내 기준에만 맞춰 ‘얼마나 자주 목욕을 시키는지’를 중점적으로 확인했다. 그러다가 거의 모든 요양병원들이 목욕 주기를 ‘일주일에 한 번’으로 정해놓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낙담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환자에게는 환자 관점의 ‘적정 목욕주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에게는 일상적인 목욕도 고된 '육체노동'에 가까웠고, 무엇보다 과도한 목욕이 감기나 피부 건조증을 유발할 우려마저 있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살결을 부드럽고 향기롭게 유지하느라 매일 필요 이상의 기름을 걷어내고 그 위에 기름을 다시 바르는 행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할머니도 나도 잠결에 하는 목욕이지만 함께여서 좋다.
간병인에게만 맡기는 것보다는 내 손으로 씻겨주는 것이 훨씬 낫다. 거품칠을 할 때 살을 부비며 주고받는 온기가 좋고, 머리를 감길 때 ‘으~’ 하며 시원해하는 표정도 보기 좋다. 할머니 역시 간병인에게 하지 못한 여러 가지 주문사항을 손녀딸에게 편히 말하곤 한다. 그럴 때면 어린 시절 집 앞 목욕탕에서 어린 나를 배와 허벅지 싸이에 척 끼우고 박박 씻겨 주던 할머니가 생각난다.
최악의 난코스는 등 밀기이다.
할머니가 누운 상태이므로 등을 밀기 위해서는 몸을 이리 저리 돌려햐 하는데, 거품과 물기로 미끈미끈한 몸을 돌리는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때에는 간병인, 나, 할머니가 한마음이 되어 ‘용’을 쓴다. 육중한 할머니의 몸을 받치느라 팔을 부들부들 떨면서 나는 올해 일본 오사카 엑스포에서 공개될 예정이라는 ‘인간 세탁기’가 하루빨리 상용화되길 기도했다.
목욕은 따뜻한 믹스커피 한잔으로 완성된다.
다 씻고 나온 할머니는 체온이 빨리 회복되지 않아 한동안 오들오들 떤다.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면 빠르게 담요로 감싸 머리를 말려 주어야 하는데, 머리가 숱이 적고 가늘다 보니 수건으로 30초 정도 문질러주면 뽀송하게 마른다. 그러고 나면 속을 녹이라고 믹스커피를 타다 주는데, 아무것도 아닌 그 한 잔을 얼마나 맛있게 들이켜는지 모른다. 커피까지 마신 할머니는 말개진 얼굴로 ‘됐다’하고는 이내 눈을 금실서리며 기분 좋은 낮잠에 빠져들곤 한다. 편안히 잠든 할머니의 얼굴을 보며 '오늘 아침도 수고했네'하고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