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할머니에게 마지막일지 모를 벚꽃이 져 버렸다.
지난 한 주는 꽃놀이 생각에 설레었다.
출퇴근길에 만개한 벚꽃을 바라보며 이번 ‘주말엔 꼭 할머니랑 꽃구경을 가리’ 다짐했었다. 작년 봄을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보낸 탓에 분명 꽃이 그립고 봄기운이 고플 터였다. 내일, 내년을 기약할 수 없는 노인과 함께 지내다 보면 뭐든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고 절대 참거나 미루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이번 주말’만 상상하며 병원 1층 곰탕집에서 식사하고 근처 공원으로 이동해 커피 한잔과 함께 벚꽃 샤워를 하는 계획을 세워 보았다.
난데없는 비바람이 기껏 세운 계획을 박살냈다.
아침까지만 해도 봄스럽던 날씨가 점심 무렵부터 초겨울로 돌변했다. 살얼음 낀 빗줄기가 사선으로 내리치는 게 육안으로도 보일 지경이었다. 약하디 약한 벚꽃잎들은 비바람 몇 대에 생명력을 잃고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이미 벚나무는 연분홍색보다 연두색 잎사귀가 더 많이 보이는 지경이 되었다. 올림픽대로 위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4계절에다 꽃샘추위, 태풍, 황사까지 각종 기상이변이 초고속으로 스쳐가는 이 나라는 한 템포 느린 노인들이 자연을 즐기기에 적합하지 않은 장소인 것 같았다.
계획은 계획일 뿐, 좌절할 시간조차 없다.
병실에 들어서니 할머니는 간병인이 손에 쥐어준 뻥튀기를 아작아작 씹으며 날씨 따위 신경도 안 쓴다는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우산으로 다 막지 못한 빗방울이 입고 있는 재킷에 매달린 것을 보곤, ‘옷 젖었어~?’하며 끝자락을 꼭 잡았다. 그 해맑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피식 나며 ‘오늘도 그런대로 괜찮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할머니의 한마디 행동 하나가 뒤죽박죽인 속사정을 말끔히 정리해 주기도 하니 참 신기한 일이다.
따뜻한 곰탕 한 그릇으로 봄기운을 대신했다.
꽃놀이는 포기했지만 애초 계획했던 곰탕은 먹여주고 싶었다. 곰탕집 사장님께 고기를 잘게 잘라달라고 신신당부해서 막 끓여낸 한 그릇을 포장해 왔다. 할머니는 배가 고팠었는지 곰탕을 맛있게 받아먹었다. ‘다음에 날씨 좋아지면 꽃구경 하러 나가자?’했더니 할머니는 곰탕에만 정신이 팔려 ‘으응~ 담에(다음에)’하고 건성 대답한다. 벚꽃은 보냈지만 철쭉 동백 개나리 그게 아니라면 여름의 신록도 좋다. 우리 둘이 함께라는 게 중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