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개를 만나다
코로나는 카페를 정적으로 가득하게 만들었다. 마스크를 쓰게 만들었고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멀어지게 만들었으며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를 꺼리게 했다. 나는 주춤해진 카페를 살리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은 다른 날과 달랐다. 햇빛이 방안 깊숙이 들어온 아침, 몸을 일으키려했지만 쉽게 침대에서 일어나지지가 않았다. 가까스로 이불을 걷었지만 마치 하루 일과를 마친 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을 때처럼 기운이 없었다. 번 아웃과 함께 우울증이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나는 심하게 온 번 아웃을 극복하지 못하고 카페를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내 평생을 따라다닌 검은 개가 있다.“
평생 우울증을 앓았다고 하는 윈스턴 처질이 이런 말을 했다. 산책길에 만나는 강아지처럼 자주 마주치고, 주인을 따라다니는 개에 비유해 우울하고 부정적인 느낌을 검은 개라고 칭했던 것이다.
번 아웃이 오고 우울감에 빠져있을 때 나는 시커먼 개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내가 알아차리고 저항하기 전에 내 몸 안에 검은 개가 이미 자리를 잡았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고 일어나도 힘이 없었다.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기운이 나를 삼켰다.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이대로 지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검은 개를 없앨 수 있을까?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인터넷, 책, 약, 한방치료 등 하나하나 시도해보았다. 처음에는 명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검은 개는 비웃을 뿐 내가 하는 어설픈 명상으로는 개를 쫓을 수 없었다. 그 다음에는 정신과의사가 쓴 책이나 마음에 관련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혹시나 도움이 될 만 한 건 없을까 매일매일 빠르게 읽어 나갔다. 이 악물고 탐구했다. 어떻게 해서든 텅 비어 에너지 없는 몸을 되살리고 싶었다. 책에서 소개하는 대로 명상도 해보고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는 러닝, 제주도 여행까지. 하지만 다 소용 없었다. 나는 지쳐갔다. 눈물이 났다. 포기해야 하나 생각했다. 그러다 한 책에서 확언에 관련한 글을 읽게 되었다. 믿음을 가지고 확언을 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황당한 말이 어디 있을까? 그럼 누구나 부자 되게? 그래도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마음 깊이 진심으로 믿고 싶었다.
’나는 여기서 벗어난다!‘
외쳤다.
누군가는 거짓말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매일 확언을 하면서부터 검은 개가 한 발자국씩 떨어져 맴돌았다.
검은 개를 내 몸 안에서 꺼내고 자신감이 생겼다. 다시는 보지 않을 만큼 멀어질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어느 정도 기운을 차렸지만 검은 개는 아직 내 주위를 맴돌며 내가 지친순간 목을 물어뜯을 생각뿐이었다. 한방신경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한 게 이쯤 이었다. 한의원에서 계속 호흡명상훈련, 한약처방, 침, 부황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검은 개는 내가 치료 받고 있는 그 순간까지 내 옆에 있었다. 분명 치료를 받으며 괜찮아지고 있긴 하지만, 하루 종일 내 곁에 있는 검은 개를 없애기에는 부족했다.
친구랑 약속이 있던 주말 아침, 여유가 있어서 검은 개를 대리고 나와 러닝을 했다. 몸 밖으로 검은 개를 꺼내서 좋아했지만 2달 정도 시간이 더 지날 때까지 내 곁에 일어나서부터 잠들 때까지 함께 하는 이 지긋지긋한 강아지는 없어지지 않았다. 그 사실이 힘들게 러닝 하러 나선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러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육교를 건너다 날씨가 좋아 잠시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 여기서 뛰어 내리면 이 모든 게 끝나겠지.‘
하늘을 보고 멍 때리다가 문득 이 생각이 들었다.
소름이 돋았다.
내가 이 정도까지 힘들구나.
이 생각을 하며 힘들게 집에 돌아왔다.
그날 저녁에 친구를 만나서 같이 밥을 먹다가 살아온 인생에 관해서 이야기 하게 되었다. 그렇게 친구랑 얘기하면서 학사경고 받고 계절학기로 겨우 학교 다녔던 이야기, 한량으로 놀고먹은 이야기, 정신 차리고 카페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 번 아웃 온 이야기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 참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사냐. 앞으로 성공할 수밖에 없겠다.“
커피를 마시던 친구가 자기는 부럽다고 얘기했다. 그 때 문득 이 생각이 들었다.
’아! 나 생각보다 잘 살아오고 있구나.‘
나는 계속 나를 채찍질하고 더 나아가길 재촉만 하면서 정작 나를 한 번도 따뜻하게 안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나를 보듬어 주지 않았다. 친구의 말에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 때였다.
24시간 내 곁에서 검은 기운을 뿜어내던 검은 개가 사라진 것이.
나는 너무 기뻐서 종교도 없는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드디어 나는 벗어난 것이다. 검은 개로부터.
그 날 밤부터 나는 누구나 가지고 있으나, 누구나 가지지 못할 편안한 하루일과를 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