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A Rail 기차 여행
VIA Rail은 캐나다의 국영 여객철도로, 동부의 대도시 코리도어부터 로키산맥을 가로지르는 장거리 노선까지 캐나다 전역을 잇는 철도망을 운영한다. 비행기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짐 규정이 비교적 자유롭고 보안 절차가 간단하며, 무엇보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캐나다의 자연을 천천히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VIA 기차 여행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그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된다. 퀘벡–온타리오 코리도어에서는 실용적인 도시 간 이동 수단으로, The Canadian과 같은 대륙 횡단 노선에서는 침대칸과 식당칸을 갖춘 본격적인 기차 여행을 경험할 수 있다. 일정에 여유가 있고 풍경과 여정을 소중히 여기는 여행자라면, VIA 기차는 캐나다를 가장 캐나다답게 만나는 방법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나는 캐나다에 거주하던 시절 두 차례 VIA 기차 여행을 했다. 첫 번째는 The Canadian 대륙 횡단 노선의 에드먼턴–토론토 구간이었고, 두 번째는 같은 노선의 에드먼턴–밴쿠버 구간이었다.
첫 번째 여행은 캐나다 이민 후 처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두 번째 회사로 이직하기 전, 시간적 여유가 있던 2002년 10월에 떠났다. VIA 열차는 여름 방학과 휴가철에는 늘 만석이지만, 10월 같은 가을철에는 비수기라 비교적 쉽게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일정 기간 동안 여러 구간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할인 패스인 Canrailpass를 이용해 매우 저렴하게 열차를 이용했는데, 이 제도는 아쉽게도 2022년 이후 폐지되었다.
당시는 학기 중이어서 가족과 함께 여행하지 못하고 나 홀로 여행을 떠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들 학교와 아내 직장도 잠시 쉬고 가족 모두 함께 여행을 떠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당시에는 캘거리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차를 타기 위해 에드먼턴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약 3시간을 이동했다. 기차에는 침대칸도 있었지만, 나는 가장 저렴한 일반석을 구입했다.
10월은 비수기라 승객이 많지 않아 두 개 좌석을 모두 차지할 수 있었고, 다소 불편했지만 몸을 눕힐 수도 있었다.
기차 내부에는 식당칸과 카페칸, 그리고 지붕이 모두 유리로 덮인 2층 관람칸이 있었다. 관람칸에서 보는 경치는 특히 인상적이었지만 좌석 수가 제한되어 있어 자리를 차지하기는 쉽지 않았다.
관람칸 입구에는 여러 승객이 공평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장시간 사용을 삼가 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지만, 이를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10월은 비수기라 자리 잡기가 비교적 수월했지만, 성수기에는 경쟁이 상당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드먼턴 동쪽으로 가면 산이 사라지고 끝없이 이어지는 평지와 호수가 펼쳐졌다. 캐나다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호수를 가진 나라라는 명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커피 한 잔을 사 들고 관람석에 앉아 광활한 대지를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 속에서 생각마저 천천히 흘러갔다. 왜 사람들이 이 느린 기차 여행을 ‘이동’이 아니라 ‘체험’이라 부르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다.
에드먼턴에서 토론토까지는 VIA 기차로 2박 3일이 걸렸다. 아침식사는 가져간 컵라면이나 즉석국, 햇반으로 해결했고, 점심과 저녁 식사는 기차 내 식당에서 사 먹었다. 기차 식당에서는 뜨거운 물을 무료로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여행에 최인호의 소설 '상도' 5권을 들고 갔는데, 기차 안에서 모두 읽었다.
토론토에서는 한국에서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던 옛 동료를 오랜만에 만나 그의 집에 머물렀고, 캐나다 동부 단풍가도 패키지 여행 (알곤퀸, 몬트리올, 퀘벡시, 오타와)도 다녀왔다.
캐나다 서부에는 주로 노란색 단풍이 대세이지만, 동부에는 여러 가지 색의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 있었다. 좋은 경치를 볼 때마다 함께 오지 못한 가족들이 떠올랐고, 다음에는 함께 다시 오리라 마음먹었다. 실제로 2004년에 캐나다 동부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토론토의 지인과 오랜만에 회포를 풀고, 다시 토론토에서 반대 방향으로 2박 3일 동안 기차를 타고 에드먼턴으로 돌아왔다.
그때 같은 객차에 한국인 승객도 있었다. 20대 자매였는데, 여행 내내 잘 지내다가 마지막 날에는 서로 다투었는지 따로 떨어져 앉아 있었다. 그 자매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몰랐기에,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언젠가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기차 대륙 횡단 여행이었지만, 이직이라는 우연한 기회로 하게 되었다. 이 여행을 통해 무엇보다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고, 혼자 하는 대륙 횡단 기차 여행은 다시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여행을 마쳤다.
두 번째 VIA 기차 여행은 그로부터 7년 뒤인 2009년 5월에 가족과 함께 떠났다. 지난번 기차 여행과는 반대 방향인 에드먼턴–밴쿠버 구간이었다. 당시 우리 가족은 캘거리에서 에드먼턴으로 이사한 뒤였다.
그 여행은 내가 아내에게 깜깜이 여행을 제안하며 시작되었다. 여행을 떠나는 날까지 행선지를 아내에게 알려주지 않고, 모든 준비를 내가 하고 아내는 그냥 따라나서는 방식이었다.
그날 아침, 기차역까지 데려다준 후배는 이렇게 말했다.
“행선지를 끝까지 알려주지 않은 선배님도 대단하고, 끝까지 묻지 않고 따라나선 형수님은 더 대단합니다.”
후배가 운전하는 차가 에드먼턴 도심의 기차역 쪽으로 향하자, 도심 남쪽에 있는 공항으로 갈 것이라 예상했던 아내는 “어… 시내에 있는 도심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나?”라고 말했다.
잠시 후 기차역이 보이자, 그제야 아내는 무릎을 치며 미소를 지었다.
에드먼턴에서 밴쿠버까지는 1박이면 도착했지만, 이 구간은 로키산맥을 넘어가기 때문에 경치는 첫 번째 기차 여행보다 훨씬 훌륭했다. 5월도 비수기여서 기차 내부는 한산했고, 여유롭게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여행할 수 있었다.
우리는 낮 시간의 대부분을 관람칸에서 보내며 웅장한 로키산맥을 감상했다. 수도 없이 차로 로키산맥을 여행했지만, 열차 안에서 보는 로키산맥은 또 다른 감흥을 주었다.
기관사는 안내 방송을 통해 철로 주변에 보이는 곰, 사슴, 엘크, 무스, 산양 같은 동물들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을 마치고 밴쿠버에 도착했다. 밴쿠버의 5월은 이미 봄이 완연해, 에드먼턴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꽃이 거리에 피어 있었다. 꽃을 좋아하는 아내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는 2010년에 밴쿠버로 이사를 갔지만, 그전까지 추운 앨버타주에서 사는 동안 밴쿠버는 늘 가고 싶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비록 하루였지만, 밴쿠버를 충분히 만끽했다.
밴쿠버에서의 시간을 최대한 늘리고 싶어 밤 11시 30분에 출발하는 마지막 비행기를 예약했었다. 시차 1시간까지 더해져 에드먼턴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밤 1시 반이었고, 집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3시였다.
아주 진하게 주말을 보내고 돌아와 그다음 주는 몸이 다소 고단했지만,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또렷이 떠오르는 행복한 추억이다.
올여름에는 17년 만에 절친과 함께 재스퍼–밴쿠버 구간을 VIA 기차로 다시 여행할 계획이다. 어쩌면 이 여행이 나의 마지막 VIA 기차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 가족과의 여행과는 다른, 평생 벗과의 여행이 어떤 느낌일지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