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빅아일랜드 여행기 #2/4

아찔했던 아침

by Geoff Jung

※ 2025년 8월에 쓴 글입니다.


전날 밤, 청결 문제로 한바탕 소동 끝에 청소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아침은 의외로 상쾌했다.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새소리에 눈을 뜨니, 열대우림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크고 푸른 나뭇잎들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우리가 이 숙소를 예약한 이유 중 하나는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터틀비치(Turtle Beach) 때문이었다.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도로를 따라 걷는 동안, 캐나다에서는 보기 힘든 이국적인 나무와 꽃들이 눈길을 끌었다.


잠시 후 도착한 해변은 멀리서 볼 때는 파도가 거세 보였지만, 해변가에 가까이 가니 바위가 많아서인지 물결은 비교적 잔잔했다. 아내와 나는 핸드폰을 들고 이른 아침의 해변 풍경을 이곳저곳 담으며 분위기를 만끽했다. 해변 바위 위에 서 있는 아내의 모습을 담기 위해 아내에게서 핸드폰을 받아 사진을 찍어주었다.

20240715_070819.jpg?type=w773 아침 해변을 감상하고 있는 아내

사진이 잘 나왔는지 확인하려고 잠깐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을 때, 아내의 허리까지 차오른 바닷물이 보였다. ‘아, 옷 다 젖었네... 어떡하지?’라고 생각하던 찰나, 아내의 키보다 훨씬 높은 파도가 순식간에 아내를 삼켜버렸다. 바로 내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저렇게 쓸려가면 정말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스치자 본능적으로 아내를 향해 달려가 손을 붙잡고 바닷물에서 끌어내기 시작했다. 주변은 크고 작은 바위들이 있었고, 미끄러운 물이끼로 발을 디딜 수가 없었다. 나 역시 몇 번이나 미끄러지며 간신히 아내를 끌고 해변 쪽으로 나왔다. 그제야 ‘살았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런데 아내는 맨발이었다. ‘내가 업고 숙소까지 가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한쪽 슬리퍼는 근처에 떠있는 걸 건졌지만 다른 한 짝은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수십 미터 바깥 파도 위에서 떠다니는 슬리퍼를 발견했다. 한참을 지켜보다가 해변 쪽으로 밀려오는 타이밍을 보고 뛰어가 슬리퍼를 간신히 건질 수 있었다.


나중에 아내가 들려준 말에 따르면, 파도가 자신을 삼킬 때 순간적으로 ‘파도에 밀려 바위에 머리를 부딪히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고 한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온몸에 힘을 주며 필사적으로 버티려 했다고 했다. 다행히 큰 사고는 피했고, 발 몇 군데가 긁히는 가벼운 상처만 입은 채 무사할 수 있었다.

yyy.jpg?type=w773 높은 파도에서 살아 나온 아내

이 일은 우리 결혼 전이던 1983년 여름, 아내의 가족들과 함께 설악산에 등산을 갔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등산 중 거센 계곡물가에서 잠시 쉬고 있었고, 나와 아내는 경사진 반들반들한 바위에 앉아 음료를 마시고 일어서는 중이었다. 그 순간 내가 미끄러졌고, 다행히 아내가 내 손을 붙잡아줘서 계곡에 빠지지 않고 무사할 수 있었다. 만약 그때 놓쳤더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후로 나는 종종 “당신이 내 목숨을 구해줘서 내가 당신과 결혼한 거야”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하와이에서의 그날 아침, 나는 41년 만에 그 빚을 갚았다고 아내에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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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젖은 채 숙소로 돌아가던 길, 우리는 해변 바로 앞에 세워진 경고판을 그제서야 보았다. ‘아... 우리만 이런 일을 겪은 건 아니었겠구나’ 싶었다.


사실 코나는 높은 파도로 유명한 서퍼들의 천국이다. 이후 유튜브에서 ‘갑작스런 큰 파도’로 낭패를 본 사람들의 영상들을 보게 되었고, 심지어 결혼식 중에도 그런 일이 벌어진 영상도 있었다. 아래 영상도 우리가 다녀온 해변과 같은 지역에서 촬영된 것이다.


https://youtu.be/8_IcHFkV8fI?si=hMkPlSSVwSPwtXe5


그날의 경험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나의 삶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그 순간의 아찔함과 안도감, 그리고 서로를 향한 본능적인 반응은 우리가 얼마나 깊은 유대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 주었다.


하와이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젖은 옷을 입은 채 숙소로 돌아가던 길은 언뜻 불편해 보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 어떤 고급 리조트의 편안함보다 값진 기억이었다. 삶이란 언제 어디서든 우리에게 예기치 못한 시험을 주지만, 그 속에서 서로를 지켜주는 손이 있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이다.


이제는 아내가 내 곁에 없지만, 그날의 아찔하고도 소중한 기억은 내 마음속에 여전히 따뜻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언젠가 다시 아내를 만나게 된다면, 나는 분명히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날, 코나 바닷가에서 당신을 구한 일... 나에게도 정말 큰 선물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