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로아 잘 지내고 있지?
멀어지면 보고 싶다더니, 물리적 거리에도 해당하는 말인 것을 실감한단다. 한국과는 시차가 7시간이나 날만큼 이곳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는 한국하고는 멀리 떨어진 곳이란다. 우리 로아와 바이바이하고 여행을 떠나온 지 겨우 이틀이 지났지만, 벌써 로아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떠오르면서 그리워지는구나.
오늘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본격적인 스페인에서의 여행 일정 첫날이란다. 오늘 하루 참 알차게 보냈단다. 남들처럼, 바르셀로나 일정의 시작은 가우디라는 건축가와 함께였지. 성 가족성당과 가우디가 설계하고 건축하다 중단된 구엘 공원, 시내에 있는 가우디가 설계한 건축물들을 실제로 둘러보았단다. 건축물들의 웅장함과 독특성,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가우디라는 건축가의 마음이 느껴져서 참 좋았단다.
특히, 바르셀로나를 찾는 첫 번째 이유가 되는 성 가족성당에서는 가우디의 성당 건축에 임하는 마음가짐과 예술성을 확인할 수 있었어. 성당 안에 들어서서 이 할아버지가 제일 먼저 느낀 감정은 겸손함이었던 것 같아. 성당 내외부의 독특한 예술적 특징이나 웅장함, 내부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도 정말 인상적이었던 것은 틀림없어. 그런데, 가우디는 자신이 설계한 이 성당 안에 들어서는 사람들에게 자신과 같이 신과 자연에 대한 순수한 경외심과 겸허함을 느끼게 하고 싶었던 것 같아. 그 많은 방문객 틈에서도 가톨릭 신자가 아닌 할머니와 이 할아버지가 성당 맨 앞줄에 앉아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도록 해주는 것을 보면 말이야.
가우디의 겸손함은 성당 건축 기간과 그의 뜻하지 않은 죽음에서도 나타나더구나. 신을 섬기는 공간인 성당이기 때문에 특별해야 했고 정성을 다해야 했기 때문에 짓는 데만 200년을 예상했던 거야. 모든 것을 자기 생각대로 구성하고 구상했지만, 자신이 마무리 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토대와 틀을 마련하고 후세의 건축가들이 마무리하도록 마련해 두었단다. 지금도 여전히 공사는 진행되고 있어. 톨레도 대성당이나 세비야 대성당도 건축에 몇백 년씩 걸린 것을 보면, 성당 건축을 대하는 겸손한 마음은 가우디만의 마음은 아니었겠지만 말이야.
가우디가 죽음을 맞는 순간도 안타까움과 더불어 그의 겸손함이 그대로 드러나지.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가우디는 성당 건축에 전념하기 위해 말년에는 성당 내에 숙소를 마련해 두고 새벽이면 인근 성당을 찾아 기도를 드리곤 했다고 해. 그날 새벽도 여느 날처럼, 허름한 차림으로 기도를 드리러 가다가 미처 그를 발견하지 못한 전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어. 누구는 산책하러 나갔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하기도 하는데, 이 점은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 어스름한 새벽에 길바닥에 쓰러진 가우디의 남루한 행색을 보고 사람들은 그를 부랑자로 판단했지. 전차 운전사는 치인 노인을 확인하고도 그냥 가버렸고, 그곳을 지나던 택시운전사들도 쓰러진 걸인 행색의 노인을 태우길 거부했대. 다행히 인근을 지나던 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택시에 태워졌지만, 들르는 병원마다 '노숙인' 치유를 거부하는 바람에 결국은 빈민을 돌보는 병원에 수용되었단다.
지인들의 수소문으로 트램카에 치인 '노숙인'이 가우디임이 밝혀졌지. 발칵 놀란 시 당국과 지인들은 큰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유했지만, 정작 가우디는 거절했단다. 행색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치료를 거부한 오만한 병원에 가는 것보다는 그곳 병원에 수용된 가난한 사람들 곁에 있다가 죽는 것을 택한 거야. 결국, 가난한 환자들 곁에서 3일 만에 죽음을 맞이했어. 당시 위대한 건축가로 존경받고 사랑받던 가우디는 자신의 장례식마저도 검소하게 치러달라고 당부했을 정도로 겸손했지.
가우디는 자연에 대해서도 겸손함 마음을 가졌고, 자연의 형상에서 자신의 건축 형상과 디자인을 만들어 냈어. 성 가족성당의 안과 밖에 있는 크고 작은 구조물들은 모두 자연에서 모습을 따온 것들이야. "자연은 신이 만든 위대한 건축이다"는 신념을 갖고 자신의 건축은 이 위대한 자연을 모방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거야. 그것이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자연 속에 들어온 기분이 드는 이유야. 기둥들은 나무 둥치이고 천장은 나무의 잎과 꽃들처럼 느껴지거든.
할아버지가 우리 로아와 나중에 이곳을 찾는다면 바로 이 점을 보여주고 싶어. 가우디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을 자세히 관찰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고, 그 모습을 스케치로 그리곤 했다고 해. 시골에서 자랐다고 해서 누구나 '자연스럽게' 그런 습관을 익히는 것은 아닐 거야. 그런 습성을 지니게 되었다고 해도 가우디처럼 실제로 현실에 적용하는 일도 창의적인 마인드와 탐구정신,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단다.
우리 로아에게 이 할아버지가 가우디를 통해 알려주고 싶은 것이 바로 이 가우디의 창의적인 마인드와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과 배려란다. 사람에 대한 배려가 바르셀로나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가우디 성당이나 구엘 공원에서만이 아닌 시내 곳곳에서 인상적으로 느낀 점이야.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에서 가장 큰 도시면서 사람도 가장 많이 살고 있고 방문객도 아주 많아서 시내는 항상 붐비지. 그런데도 이곳을 온종일 걸어 다녀도 참 즐겁고 편한 기분이 든단다. 다른 큰 도시에서는 느끼기 힘든 기분이지.
이 기분 좋고 편안한 느낌이 도시의 예술적 건축물과 사람 위주의 도로 때문임을 한나절만 걸어 다녀도 바로 알겠더구나. 스페인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큰 도시인 만큼 시내는 건물이 빼곡히 들어서 있지만, 답답하거나 위압적인 모습이 아니야. 구조와 모양, 색상이 통일성을 가지면서도 각기 창의적이고 독특한 모양, 예술적인 구조와 장식이 담겨 있어. 처음에는 가우디가 도시 전체를 설계하고 건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하루 종일 시내를 돌아다녀도 건물 자체만으로도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야. 가우디가 활동하기 이전에 들어선 상당수의 건물에 반영된 미적 감각으로 미루어, 가우디의 파격적인 디자인이 날개를 펼칠 수 있는 바탕은 이미 이 도시에 마련되어 있었던 것 같구나.
예술적인 건축물들이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면,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발과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던 것은 사람을 배려한 도로란다. 바르셀로나 도심의 거의 모든 도로 구조가 그래. 중심지인 카탈루냐 광장에서 사방으로 뻗은 도로들은 한결같이 사람들이 편하게 걷고 함께 어울리고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어. 우거진 나무가 줄지어 늘어선 가운데의 넓은 구역은 곳곳에 벤치가 놓여있어서 사람들이 편하게 휴식을 취하거나 대화를 나누고 활동하는 공간으로 마련되어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가 찾은 저녁 시간에는 한쪽에서는 비보이들의 춤 공연이, 다른 쪽에서는 거리의 악사가, 관객들과 어울려 열기를 뿜어내더구나.
그 중앙 공간 양옆으로 일방통행의 좁은 자동차 길이 나 있고, 다시 자동차 길에서 건물 사이에 자전거 길과 도보 통행을 위한 넓은 보도가 난 구조야. 자동차들도 붐비는 좁은 길을 가면서도 도로를 건너려고 하는 사람이 보이면 우선 양보하는 운전 모습도 인상적이야. 그 많은 사람이 걷고 활동하면서도 서로 부딪치는 일도, 인상을 찌푸리는 일도 없이, 다들 편안한 마음으로 걷지. 혹시나 서로 부딪치더라도 먼저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말을 건네곤 해.
우리 같은 낯선 사람들을 대하는 이곳의 사람들 역시 친절함을 넘어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해주더구나. 저녁 식사를 위해 다운타운의 식당에 들어가서도, 밤에 시장기를 달래려고 재래시장에 있는 왁자지껄한 야외 타파스 식당에서도, 영어로 음식을 주문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단다. 그런데도 그 많은 손님 틈에서도 서둘지 않고 웃음과 몸짓, 터치로 친근함을 표시해주니, 낯선 환경에서도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되었어. 사실, 외국에서 식당에 들어가는 일은 마음이 그리 편하지는 않단다. 낯선 음식에, 언어 소통의 어려움에, 각기 다른 식사 문화 등등, 신경이 많이 쓰이기 때문이지. 바르셀로나에서는 첫날부터 크게 꺼리지 않고 음식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이곳이 처음 찾는 방문객에도 여러 면에서 매력적이고 특별한 도시임이 분명하구나.
늦은 밤에야 호텔에 들어왔더니 야간 담당 젊은 직원이 반겨주더구나. 그 젊은 직원에게 물어보았지. 이곳 사람들이 낯선 사람에게도 특별히 친절하고 친근하게 대해주는 이유를? 오히려 내게 반문하더구나.
'친절하지 않고 친근하게 대해주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나요?'
이 할아버지가 제대로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지. 이 젊은이가 스페인 역사에서 바르셀로나가 처했던 독특한 배경을 설명하면서 더불어 이곳은 역사적으로 개방적이었고 다문화의 배경을 갖고 있어서 낯선 사람에게도 친근하게 대하는 일이 자연스럽다더구나. 더군다나, 자신의 도시를 찾아온 손님은 당연히 반갑게 맞아주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맞아,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할머니와의 이번 스페인 여행의 출발점에서 이미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단다.이번 자유여행에서는 구경보다는 오늘처럼 스페인 사람들의 속살을 경험해보는 것이 더 큰 목적이란다. 이번 경험으로 나중에 우리 로아의 내면의 성장에도 할머니 할아버지를 통해 자양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단다. 출발이 좋으니 앞으로 일정이 기대가 많이 되는구나.
그런데, 편안하게 맘껏 걸어 다닌 덕분에 할머니 발에 물집이 잡혔구나. 오늘 하루 2만 보하고도 2천 보나 걸었거든. 앞으로도 많이 걸어야 하는데 걱정이 되지만, 할머니는 오히려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할머니는 여행 떠나면 원래 이렇게 씩씩하시거든. 집에서 다운됬던 몸도, 여행만 떠나오면 완전히 업되시는 것을 보면, 할머니에게 여행은 보약인 듯해.
할머니 할아버지는 오늘 잠을 자면서 내일 일정을 위한 또 다른 보약을 먹게 될 거야.
꿈나라에서 로아와의 만남이란 보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