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아 육아 2주 차 첫날
어제 현아에게서 생각지 못한 소식이 왔다. 뉴욕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수현이가 긴급하게 코로나 PCR 검사를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뉴욕 출장 중 호텔 방을 함께 사용했던 일행이 코로나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순간, 혹시 양성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아내나 나나 머리가 하얘졌다. 손녀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이 이렇게 잔인한 방식으로도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어른들이야 불편함만 감내하면 되지만, 겨우 생후 3개월 된 로아가 걸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현아가 만일에 대비해 로아를 위한 만반의 조치를 마련해 두었겠지만.
현아와 수현이는 우리보다도 더더욱 멘붕 상태이리라. ‘로아를 떼어놓고 어떻게 출근하지요?’ 했던 현아인데. 뉴욕 출장 일주일 내내 로아가 눈앞에 어른거렸다는 수현인데, 로아 우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데 자신의 방에 갇혀 나가 볼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생각조차 끔찍했을 것이다.
아내나 나나 ‘말이 씨가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던지, ‘방정맞은’ 가정은 애써 입 밖에 내지 않은 채, 걱정 한 아름을 안고 하루를 보냈다. 특히, 아내의 경우 이번 주 토요일 자신의 연주회에 로아를 데리고 수현이와 현아가 오기로 했던 참이었으니 더 먹먹해했다.
걱정을 한 아름 안고 인천행 첫차에 올랐다. 차 안에서 핸드폰을 몇 번이나 확인했는지 모른다. 드디어 현아에게서 문자가 왔다. 음성 판정! 나도 모르게 두 손이 모아졌다. 현아의 문자에도 안도감이 듬뿍 묻어난다. 로아에 대한 걱정으로 가슴 졸였던 긴장이 풀리자, 이제야 버스 안에서 스르르 잠이 몰려왔다.
인천이 가까워 오자 또 다른 관심사가 문득 떠오른다. 로아가 지난번처럼 나를 본 순간 울음을 터뜨릴 것인지, 아니면 이번에는 웃어줄 것 인지다. 아내도 그 점이 무척 궁금했던지, 아이들 집에 닿기 전에 로아의 반응이 어땠는지 전화로 묻는다.
아파트에 도착한다. 아 저런, 타이밍이 좋지 않다. 로아 우유 시간이다. 평소 짜증이 별로 없는 로아가 마음껏 짜증을 부리고 목청을 높이도록 스스로 허락한 시간이다. 우유를 다 먹은 다음에 로아 앞에 짠하고 나타날까? 우유를 배부르게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나도 참 그렇다. 지난주의 대면 순간이 지금껏 생생하고 오늘 이 ‘사소한’ 일에 소심하게 긴장한 것을 보면 말이다.
얼마 전 읽은 예일대 심리학 교수의 책 내용이 떠오른다. 인간은 안주하는 대신 일부러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 도전과 극복을 통해 삶의 만족을 이어가는 특성을 보인다고. 긍정심리학에 익숙했던 나 역시도 읽으면서 공감했던 부분이었다.
로아와의 오늘 만남 타이밍도 자발적인 도전으로 삼았다. 우유를 준비하는 아빠 품에 안겨있는 로아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로아야, 제발!’
로아를 내 품에 안아 든다. 로아의 시선이 내게로 옮겨온다. "우리 로아 안녕! 할아버지야, 로아도 할아버지 보고 싶었지?" 로아에게 아양을 떨며 목소리 톤을 높여 다정하게 말을 건다. 로아의 성장 단계에서는 시각보다는 청각이 발달해있고, 여자아이들은 남성의 저음보다는 여성의 하이톤을 더 선호한다고 육아서에서 읽었기 때문이다.
로아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긴장의 순간이다. 귀로는 내 말을 들으면서 내 얼굴을 탐색하는 로아의 고정된 시선이 길어진다. ‘누구신가요?’의 어리둥절했던 표정에서 ‘아하!’의 편안한 모드로 풀린다. 어느덧, 로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더니 특유의 매력적인 큰 미소로 바뀐다. ‘고맙다, 로아!’ 할아버지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는 알 수 없으나, 로아는 나를 친숙한 사람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렸다. 확실한 점은 나도 어느덧 중증의 ‘손주 바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부터 낮 동안은 돌봄 도우미 없이 나 혼자 온전히 로아의 육아를 독차지하게 된다. 수현이는 재택근무지만 일과 시간에는 자신의 ‘사무실 방’에서 업무에 바쁠 것이고, 오늘따라 현아는 일과 후 치과에 들렀다가 7시경에 귀가한다.
보통 로아와 같이 3개월 된 영아들은 돌보기가 편하다고들 한다. 우유 먹이기, 잠재우기, 기저귀 갈아주기와 같은 생리적인 부분만 해결해 주면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잠을 자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게 읽었고, 그렇게 들었고,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지난주에 이어 오늘 하루 로아를 돌보면서 ‘그렇게’가 그렇지만은 않다는 점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로아의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활동에도 보호자의 수동적인 대처가 아닌 적극적인 돌봄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로아의 이 단순한 생리적인 활동에 터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깨닫는다. 이 깨달음은 읽어서, 들어서, 믿어서가 아닌, 내 몸의 자연적인 반응을 통해서다. 로아 돌봄 행위로 인해, 그간 잊고 있던 로아 아빠 수현이를 키우며 익혔던 30여 년 전의 경험치가 몸으로 되살아난 느낌이었다.
맞다. 수현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경험이 있으니, 몸이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생각에 앞서 몸이 먼저 이렇게 반응하니 말이다.
우유를 먹이면서 손으로는 끊임없이 로아의 머리와 팔다리를 어루만져 주며 이야기를 걸어준다. 잠을 재우면서 토닥거려주며 자장가를 불러준다. 잠든 요람을 바로 옆에 두고 선잠에서 깨어날라치면 바로 자장가와 더불어 토닥거림으로 다시 잠으로 안내한다. 기저귀를 갈아주며 눈을 맞추고 말을 건네며 토실토실한 다리를 마사지해준다. 연속되는 토막잠에 로아가 피곤해지면 오전 오후 한 차례씩, 누운 채로 가슴에 로아를 꼭 껴안은 채 자장가를 불러주며, 로아의 꿈을 꾸는 듯한 표정 변화와 옹알이를 지켜본다. 로아의 호흡에 어느새 나의 호흡이 잦아들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함께 달콤한 곤한 잠에 빠져든다.
깨어있는 시간에는 사운드북으로 동화를 함께 듣고, 펼쳐 든 그림을 짚어가며 내가 동화 속 인물이 되어 온갖 의성어와 의태어를 동원해 스토리텔링 해준다. 로아의 표정을 살피며 휘둥그레진 눈동자와 옹아리, 더욱 활발해진 팔다리 파닥 거림에 맞장구쳐준다. 할아버지와 로아가 함께 엮는 대화인 셈이다.
‘아빠의 종일 이어지는 목소리 때문에 업무에 자꾸 헷갈리네요.’ 하루 업무를 마치고 거실로 나오면서 아들이 싫지 않은 목소리로 툭 던진다. 평소 말수가 그리 많지 않고 젊잖은 편인 이 아빠의 로아를 향한 호들갑에 다소 의아한 모양이다. 나도 내가 의아하다.
오늘, 재차 깨닫는다. 부모의 육아든, 조부모의 육아든, 육아의 본질은 ‘터치’ 임을. 신체적 터치는 물론이려니와 눈과 마음의 터치도 함께. 영장류의 육아와 성장을 인류학적 의의에서 관찰한 책 <<터칭>>에서 애슐리 몬터규도 터칭을 모든 생명의 숙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영아 발달 과정을 월 단위로 세분하여 신체와 인지, 언어발달 분야의 특징을 설명하고 규명하는 이론들이 참 많다. 연구결과에 토대를 두기 때문에 나름 신뢰할만하며, 나 역시도 로아 육아에 참고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90일 된 영아의 마음과 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어떻게 온전히 규명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 낼 수 없다.
과학적/심리적 실험이나 수치로 규명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영유아의 머리와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이며, 그래서 영유아들의 머리와 마음 활성화에 터칭은 그 무엇보다도 더더욱 중요하다고 믿는다.
아기들의 신비롭고 순수한 영혼.
윌리엄 워즈워드는 시로, 구스타프 말러는 음악으로 아기의 영혼에서 천국을 노래했던 이유다.
나는 오늘도 로아와 끊임없이 손으로, 눈으로, 입으로, 마음으로 터칭 하며, 로아의 움직임과 표정과 옹알이와 보이지 않는 영혼에 겸손하게 나의 입과 귀와 마음을 기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