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아 육아 첫날
본격적인 나의 로아 육아 첫날이다.
2주 만에 보는 로아. 당연히 로아는 이 할아버지를 특유의 매력적인 미소로 반길 줄 기대했다. ‘당연히?’
그런데, 나를 낯설게 바라보던 로아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지더니 짧은 울음을 터뜨린다. 순간, 당황했지만 곧 ‘아, 우리 로아에게 인지 기능이 생기는구나’ 생각하며 가까스로 마음을 수습했다.
‘아버님, 서운하지 않으셨어요?’
직장에서 카톡으로 이 소식을 접한 현아가 위로(?)를 건넨다.
‘아냐, 이제 겨우 3개월 된 로아가 그간 잠깐씩 본 할아버지를 알아보겠어?’
당연한 말이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당연하지 못했다.
그런데, 낯을 가리기 시작하는 것은 생후 5개월은 넘어서부터라고 육아이론 선행학습을 통해 익혔고, 로아는 만 3개월도 안되었는데, 어찌된 일일까? 육아 발달 단계 이론은 잠시 접어두고, 그저 단순하게 추측해 본다. 로아에게 이번 주는 혼돈의 시간임이 분명하다. 그동안 매일 안아주고, 우유 먹여주고, 재워주던 엄마와 아빠는 갑자기 보이지 않고, 온통 새로운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등장하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엄마는 이제 직장에 복귀해서 저녁에나 돌아오시고, 아빠는 뉴욕 출장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신, 육아도우미 이모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외할머니와 이 할아버지가 번갈아 가며 나타나서는 ‘우리 로아, 안녕! 잘 있었어!’ 하고 들뜬 목소리로 반갑게 인사한다. 하지만, 로아로서는 ‘이분들은 누구시지?’식의 혼란이 오는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나의 로아 육아 시작 날에 ‘날벼락’과 같은 로아의 울음 대응은 내겐 큰 교훈이다. 할아버지의 생각과 눈높이가 아닌 로아의 성장단계와 눈높이에서 자신을 돌보고 보살피고 교감해 달라는 로아의 주문이렷다. 수현이와 동생을 키운 지 30여 년이 다 돼가니 다시 배워야 한다.
‘아빠, 육아도우미 이모한테 전투적으로 육아 방법을 배워둬요.’
엊저녁 뉴욕에서 아들이 전화해서 내게 당부한 말이다. ‘전투적으로?’ 아들이야 전투로 이름난 전방 이기자 부대에서 전투훈련을 받은 경험이 많겠지만, 나야 미군 부대, 그것도 부산에서 전투와는 거리가 먼 군대 생활을 해서 그런지 낯설게 들렸지만, 말뜻은 알았으니 ‘그래, 알았다’고 안심시켜주었다. 경험 많으시고 자상한 육아도우미 이모가 이번 주까지 나오시기 때문에 현실적인 육아에 대한 노하우를 배울 수 있어 다행이다. 다만, 아들은 실망할지 모르지만, 군대를 경험한 적이 없을 이 육아도우미 여성분도 ‘전투적’으로 가르쳐 주시지는 않을 듯하다.
현아와 수현이가 직접 강릉으로 찾아와서 로아의 잉태 소식을 그야말로 ‘깜짝 선물’로 전해 준 이후, 로아의 출산이 점점 다가오면서 내겐 분명한 계획이 생겼다. 격대 육아다. 할아버지로서 손녀 육아에 직접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6월 중순부터 내년 2월까지 직장에서 휴식기를 갖고, 매주 3일씩 로아를 전담해서 돌보기로 했다. 할아버지의 손녀 육아 휴직인 셈이다. 이보다 더 행복하고 의미 있고 보람된 일이 더 있을까 싶다. 나의 육아 참여 의사에 흔쾌히 반겨준 며느리 현아와 아들 수현이가 고맙다. 아내도 시간이 허락되는대로 육아에서 나의 부족함을 채워줄 것이다.
아들의 부탁대로 ‘전투적으로’ 육아 방법을 익히는 일도 분명 현실적으로 필요한 일이지만, 동시에 할아버지의 손주 육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격대 육아의 동기는 조부모로부터 손주로의 대물림에 있다.’
미국의 어느 유명한 발달심리학자의 단순한 정의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이 대물림은 당연히 재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치관, 관점, 인품, 윤리, 타인과 세상에 대한 배려와 봉사 등등. 바로 내가 격대 육아에서 로아에게 전해주어야 할 ‘대물림’ 명제들이다.
정신과 품성, 사회성의 손주에게로의 대물림이란 명제에서 할아버지로서는 항상 옷깃을 여미어야 한다. 대물림이란 내가 가진 것을 물림 해 주는 것을 의미하지만, 내가 부족하거나 갖지 못한 것까지 스스로 내 삶 속에 보완해서 챙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로아 육아 첫날, 나는 오늘 로아에게 무엇을 ‘대물림’ 해주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