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아 할아버지 Oct 16. 2023

<무릎서재> 열한 번째 이야기

무지개 물고기 -- 개성 멜로디와 조화 리듬의 이중주

“로아가 요즈음 부쩍 자기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해요. 아직 말은 못 하지만 자기 마음과 생각을 어떤 식으로든 고집스럽게 알리거든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인데. 내가 로아에게 원하던 바이고.”

“로아가 자기 개성이 강한 아이로 성장할 것이란 건 저희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어요. 저나 수현이 모두 개성이 강하니까요.”

“그건 그래.”     

“로아가 자기 색깔이 분명하고 자신만의 주관이 뚜렷한 아이로 성장하기를 저희도 바라는데, 걱정도 있긴 해요. 그러다 보면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려 지낼지, 다른 아이들로부터 따돌림당할지 그런 걱정이요.”


로아야,

18개월 된 로아가 이 할아버지 눈에도 이전과는 다르게 부쩍 자기 색깔을 드러내고 있단다. 함께 책을 읽을 때도 할아버지가 골라주는 책보다는 로아 스스로 골라서 가져오고, 그 많은 책 중 요즈음 로아가 좋아하는 몇 권만 계속해서 보더구나. 산보하러 나가면 일단 할아버지 손을 뿌리치고 제자리에 서서 두리번거리지. 할아버지가 안내하는 안전한 ‘뻔’한 길은 한사코 거부하고 로아 시선을 끄는 곳으로만 발걸음을 옮기기 일쑤란다. 자기 마음에 드는 것만을 고집하고, 그 뜻이 거부당하면 절대 고분고분하지가 않더구나.


이런 모습을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떼쓴다’고 표현하지만, 로아 입장에서는 자기 마음과 생각을 존중해 달라는 표현이겠지. 이런 모습이 로아만의 특징은 아닐 거야. 생후 18개월이면 뇌의 시냅스 연결이 왕성하게 전개되고 인지기능이 눈에 띄게 성장하는 시기라고 해. 그런 만큼 이 시기에 로아와 같은 아이들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태도로 양육하느냐에 따라 성격과 성향이 많이 달라진다고 하지. 아동발달 전문가들의 이론에 의지하지 않고도, 로아와 함께 지내다 보면 경험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겠더구나.


사실은 엄마의 염려도 이해는 돼. 로아도 내년부터는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할 것이고, 그다음은 유치원, 초등학교에 들어갈 텐데, 이때 마음이 맞지 않아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거나, 아니면 친구들로부터 따돌림당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거든.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일어나는 이런 일들은 어린이의 성격이나 성향과 크게 연관이 있단다. 엄마 염려대로 개성이 강할수록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아지고.



나의 색깔이냐, 아니면 친구들과의 어울림이냐?     


로아는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까? 고민되지? 하지만, 할아버지는 이것이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단다. 나의 개성도 지니면서 친구들과도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런데, 아이들 세계에서는 이 둘을 함께 가져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더구나. 이때가 되면 어린이들은 또래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또래집단의식이 생기기 시작하고, 많은 경우 서로 유사한 특성을 지닌 아이들끼리는 유대 관계를 맺고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아이들은 따돌림하거나 배제시킨단다. 아이들에게도 소셜미디어가 주된 소통 방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러한 또래집단에서 배제와 따돌림 경향도 더욱 심해지고 있어서 로아와 같은 아이를 둔 부모의 걱정이 적지 않은 이유란다.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소위 ‘사이버 왕따’라는 것이 그 좋은 예가 되겠구나. 정보기술 활용은 어른 못지않게 아이들도 적극적이지. 소셜미디어를 통해 아이들이 과거보다 많은 또래들과 사이버 상으로 연결되어 소통하고 있다는 점은, 일부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내 편 네 편으로의 편 가르기를 더욱 손쉽고 심하게 할 수 있도록 할 것이야. 사이버 상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이겠지. 근거 없이 누군가를 놀리고 비방하는 글이 사이버 상에서는 사실처럼 간주되고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아이들에게 전달되고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피해를 당한 아이는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겪게 된단다.


어른들이라고 이 점에서 아이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나은 것 같진 않아.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대화상대로 여기지 않고,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라서 비판과 비방만 일삼는 일이 요즈음 우리 어른들 세상에 만연해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답답하단다. 생각과 성향에 따른 내 편과 네 편으로의 갈라 치기는 요즈음 무척이나 심해졌는데, 기술발달에 기반을 둔 소셜미디어의 발달이 큰 원인이 되고 있지. 엄격한 팩트 체크를 거쳐 나오던 이전의 뉴스나 정보와는 달리, 소셜미디어를 통해 나오는 뉴스나 정보는 자체 검증을 거치지 않고 보다 많은 관심을 끌기 위해 객관성과 균형보다는 한쪽으로 치우친 자극적인 뉴스와 정보만을 내보내기 때문이야. 


어른들 세계나 아이들 세계에서의 갈라 치기 문제는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마음이 적기 때문이란다. 또래집단으로부터 놀림받거나 배척당하는 일은 피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본인의 성격과 성향을 남한테 맞추거나 자신의 개성을 키우지 않는 것은 로아가 살아갈 미래 세대에 올바른 태도는 아니란다. 왜냐하면, 미래사회에서는 개개인의 개성과 독창성, 창의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야. 아무리 기술이 발달된다고 해도, 이들 특징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 영역으로, 과학기술에 의해 대체 불가하기 때문이지. 동시에 미래 사회는 타인과의 공감과 협력 또한 중요하단다.


즉, 로아가 살아갈 미래세계에서는 본인의 개성과 독창성을 갖는 것과 동시에 남들과 어울리고 협력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한 요소란다. 무엇보다도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 발달이 지금보다도 더더욱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야.


개성과 독창성이 중요한 이유는 지금까지 인간이 해오던 단순한 일은 인공지능 기반 기술로 대체되고 인간이 하는 일은 기계로 대체되지 않는 독창성으로, 이 독창성은 어려서부터 각자의 개성에 의해 길러진단다. 그렇기 때문에 로아는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을 기르고 표현하는 법을 꾸준히 배워야 하는 것이지.



로아 자신만의 개성과 감정, 독창성 못지않게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감 능력과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 역시도 미래 사회에서 중요하단다. 미래 사회에서 소통과 일은 더더욱 소셜미디어와 같은 디지털 공간에서 이뤄질 것이고 인간 사이의 직접적인 접촉과 사회적 교류는 줄어들기 때문이지. 사람들 사이의 직접적인 교류와 소통이 줄어드는 만큼 마음속으로는 타인을 더욱 그리워하고 이해받기 원한단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니? 사람들과의 교감과 소통 못지않게 협력 역시 중요하겠지. 혼자서 해오던 단순한 일은 기술로 대체되고 있고, 인간은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로 얻은 막대한 정보와 데이터를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의 생각과 관점, 협력이 요구된단다.


그런데, 보다 균형 잡히고 온전한 개성은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과 협력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닌지 싶구나. 로아 자신이 누구이며 로아는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낯선 시각이 도움이 되기 때문이야. 내게 당연한 것도 다른 사람의 낯선 시각으로 보면 당연하지 않은 경우가 참 많으니까. 낯선 시각에는 당연히 세상의 다양한 국가와 문화까지도 포함되어야겠지. 이제는 낡은 용어가 되어버렸지만 지구촌이라는 용어가 점점 더 실제 세상이 되어 갈 테니 말이야. 자신의 생각과 태도, 삶에 대해 끊임없이 낯선 시각으로 바라보며 세계시민 의식을 키우고 갖추는 것은 앞으로 보편적인 가치가 될 것이야.


자신만의 개성과 가치관을 키우고 남들과 어울리는 사회성을 기르는 일, 세계시민 의식을 기르고 태도를 기르는 일은 상당 부분 어린 시절에 결정되기 때문에, 로아가 어린이로 성장하면서 이 두 가지를 배우고 익혀가는 일은 중요하단다. 그런데, 로아가 어린이로 성장할 시기에 내 편 네 편 식의 편 가르기와 다름에 대한 불인정, 상대에 대한 무책임하고 근거 없는 비난과 왕따 성향이 강한 소셜미디어는 아이들에게 지금보다 훨씬 더 주된 소통 수단이 될 것이란다. 그렇다고 시류를 거슬러 로아가 편지나 전화, 이메일로 친구들과 소통할 수는 없는 것도 분명하지. 오히려 놀림과 더한 고립을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야.



그렇다면, 로아 자신만의 개성과 독창성을 기르고 유지하면서 다른 아이들과 공감과 신뢰의 친구 관계를 맺는 방법은 없을까? 요즈음 로아가 할아버지와 함께 가끔씩 펼쳐보는 <무지개 물고기> 그림 동화책을 통해서 기술 발달의 시대에 왕따 문제와 개성-협력 공존의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구나.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 동화의 스토리텔링은 다음과 같아.

  

옛날 옛적, 반짝이는 바닷속에 무지개 물고기라는 이름을 가진 물고기가 살았단다. 무지개 물고기는 이름대로 7가지 무지개 색깔로 번쩍이는 비늘로 몸이 덮여 있어서 바닷속 물고기 중에서 가장 외모가 멋진 물고기였지.  
자신의 외모에 우쭐해진 무지개 물고기는 자기가 다른 물고기보다 훨씬 잘났다는 생각에 혼자서만 우쭐거리며 지내고 다른 물고기와는 어울리지도 않았단다.      
어느 날 한 작은 파란 물고기가 다가와서는 자기에게 그 멋진 비늘을 하나만 줄 수 없냐고 물었지만, 무지개 물고기는 요청을 무시하고 다른 곳으로 헤엄쳐 가버렸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작은 물고기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맴도는 거야. 그래서 지혜로운 문어를 찾아갔어.     
문어는 비늘을 다른 물고기에게 나눠주고 친구로 사귀라고 조언했지만, 무지개 물고기는 처음에는 망설여졌어. 소중하고 멋진 비늘을 자기만 갖고 지니고 있고 싶었기 때문이었지. 그렇지만, 큰 마음을 먹고 그 작은 물고기에게 비늘 하나를 주었단다. 그랬더니 그 작은 물고기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며 자기가 받은 반짝이는 비늘을 친구들에게 자랑하러 쏜살 같이 헤엄쳐 사라졌지.         
이 소식이 온 바다 물고기에게 퍼졌고, 다른 물고기들도 하나둘씩 무지개 물고기를 찾아와서는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을 조건으로 비늘을 요청하게 돼. 무지개 물고기는 자신의 멋진 비늘을 나눠주는 일을 여전히 아까워하지만, 이상하게도 이전에 느낄 수 없었던 행복한 기분도 들기 시작했지. 결국에는 자신에게 비늘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 비늘을 나눠주고, 이제 친구가 된 다른 물고기들과 함께 바다를 헤엄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단다.


이 무지개 물고기는 처음에는 자기 정체성과 개성을 남들과는 다른 화려한 외적인 요소에서 찾았구나. 다른 물고기들은 갖지 못한 반짝이는 무지개 빛깔 비늘이 자기 몸을 온통 덮고 있으니 얼마나 뽐내고 싶었을까? 이런 비늘을 갖지 못한 다른 물고기들을 자신보다 못났다고 생각해서 무지개 물고기는 어울리지도 않고 혼자서 외모를 뽐내면서 돌아다녔지. 이러한 무지개 물고기의 모습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지. 자신의 개성을 내면이 아닌 외적인 화려함에서 찾고 다른 물고기들을 무시하고 어울리지도 않았으니 말이지.


자기에게 비늘을 하나만 달라던 파랑물고기의 요청을 거절했던 무지개 물고기는 어쩐 일인지 마음이 불편했고 결국에는 지혜로운 문어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지. 처음에는 망설여졌지만 문어의 조언대로 자기 비늘을 나눠주기 시작하면서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도 느끼고 다른 물고기들과 친구가 되어 누리는 어울림의 즐거움도 알게 되지.


무지개 물고기가 자랑거리인 반짝이는 비늘을 부러워하는 다른 물고기들에게 나눠준다는 이야기는 로아도 배워야 할 미덕이겠구나. 자신에게만 있는 멋진 비늘을 가지지 못한 다른 물고기의 처지와 마음을 헤아려서 나눠줌으로써 다른 물고기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자신도 행복을 느끼게 되지 않니. 나눔을 통해 그 물고기들과 친구 관계도 맺게 되고, 함께 어울리면서 혼자만 지낼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또 다른 행복을 느끼게 되지. 이 이야기를 읽는 로아도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어.


그런데, 이 책은 할아버지가 로아에게 들려줄 책 목록에 들어있지 않았단다. 이 이야기에 들어있는 개성에 대한 개념과 친구 관계 맺기의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야. 우선, 무지개 물고기는 내면적인 것보다는 반짝이는 멋진 비늘이라는 외면적인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있지. 멋진 외면적인 모습이 분명 다른 물고기와 구별되는 무지개 물고기만의 개성이자 독특한 점이기는 하지만 자칫 화려한 외면적인 모습만을 중시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단다. 다른 물고기들도 개성과 정체성을 외형적인 모습에서 찾는 것은 마찬가지야. 이들은 하나 같이 무지개 물고기의 화려한 비늘을 부러워하고 동경하면서 자신들의 ‘평범한’ 외모에 열등감을 갖고 무지개 물고기의 비늘을 하나라도 얻으려고 하지 않니? 무지개 물고기로부터 비늘을 얻게 되자 자기 몸에 붙이고 자랑스럽게 뽐내고 다니고 말이야.


로아야, 참된 자기 개성과 독특성은 겉으로 드러나는 외면적인 것보다는 각자의 내면적인 것이 더욱 중요하단다. 무지개 물고기는 나중에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내적인 변화를 하지만, 다른 물고기들은 여전히 외적인 것만을 중시한다는 인상을 지을 수가 없구나. 외모는 각자 달라 보이고 평범해 보여도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독특한 개성과 능력을 갖고 있고, 각자 자기의 개성과 능력을 중시하고 다른 사람의 개성과 능력을 존중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도 말이야.


나중에 무지개 물고기가 자기 비늘을 다른 물고기들에게 나눠주는 이유에는 다른 물고기들에 대한 배려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외톨이 신세를 면해보려는 동기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구나. 다른 물고기들이 무지개 물고기의 비늘을 원했지만 무지개 물고기가 거절하자 함께 왕따 시키고 어울리지도 않았잖니. 물론, 무지개 물고기가 우월감에 다른 물고기들과 어울리지 않았던 이유도 크지만. 무지개 물고기가 자기 비늘을 다른 물고기들에게도 나눠주고, 다른 물고기들도 무지개 물고기를 친구로 받아들이는 것은 잘된 일이긴 하지만, 친구 관계 맺기가 주고받기를 전제로 이뤄진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로아는 자신의 개성과 독특성을 무지개 물고기처럼 외면적인 요소에서만 찾아서도 안 되고, 다른 물고기들처럼 자신의 본모습을 못마땅해하면서 외형적으로 보다 좋아 보이는 대상을 마냥 부러워하고 모방하는데서 찾아서도 안 되겠지. 다른 아이들과의 관계 맺기와 어울림에서도 처음의 무지개 물고기처럼 다른 친구들을 무시하고 혼자서 잘난 체한다던지, 다른 물고기들처럼 상대의 개성과 독특성, 나와 다른 차이를 인정하지도 존중하지도 않고 오히려 다른 친구들과 함께 배제시키는 행동도 해서는 안 된단다.


할아버지가 이 세상을 살아보니 자기 삶을 남의 시선에는 상관없이 사랑하며 주도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하고, 그런 사람들이 자기중심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남에 대한 배려와 존중에 더욱 관심을 갖더구나. 왜 그럴까? 자기 삶과 생각, 태도가 소중한 만큼 남의 삶과 생각, 태도 역시도 마찬가지로 배려해 주고 존중해 주기 때문이란다.



로아야,

지난주 할머니가 연주하시던 멋진 피아노 4중주 연주회, 할아버지 품에 안겨 봤지? 할머니가 제1 바이올린으로 멜로디를 연주하면 제2 바이올린과 첼로, 피아노가 각자의 리듬으로 멜로디와 화음을 쌓으면서 풍성하고 다양하고 멋진 음악을 만들어냈지? 첫 두곡 연주 내내 로아가 시선을 떼지 않았던 이유이지 않을까?


연주를 들으면서 내내 상상해 보았단다. 로아만의 개성 멜로디와 다른 아이들과의 조화 리듬이 멋지게 어우러져 훌륭한 화음을 만들어내는 로아의 모습을 말이야.

작가의 이전글 <무릎서재> 열 번째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