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한지 한 달이 지났다. 이제 기본적인 활동은 할 수 있지만 여전히 격렬한 운동은 자제해야 한다. 시험은 치지 못했다. 눈의 회복을 위해 의사가 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여전히 왼쪽 눈은 쫌 뿌옇게 보이고, 완벽하게 초점이 맞지 않는다. 지난주 토요일 상태는 오랜 시간 동안 글을 보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든 상태였다.
한 달 동안 많은 책을 들었다. 요즘은 한 달에 일정 금액을 내면 그 기간 동안 원하는 만큼의 책을 다운로드하여서 들을 수 있다. 읽고 싶었던 많은 문학책, 심리학 책을 읽었다.
몇몇 심리학 책에서 나온 이야기 중 "니부어의 평화의 기도"가 내 마음을 강력하게 사로잡았다.
제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주시고,
제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그리고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내려주소서.
길지도 않은 기도문이지만, 금세 외워버렸다. 이제 내 눈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없다. 심지어 태어나기를 고도근시로 태어나 특별히 관리를 잘못한 것도 아니다. 유일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눈을 문지르지 않는 것. 온 신경을 곤두세워 그것 만은 노력하고 있다.
눈 때문에 특별히 속상하지는 않다. 사람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눈을 하나만 가지고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좋지 않은 병에 걸려 일찍 죽는다. 길다고 더 고귀하고 짧다고 가치 없는 것도 아니고, 더 많은 성취를 이룬다고 큰 가치가 있는 삶도 아니다. 그러나 그 삶의 가치는 하나의 삶으로서 각각 동등하다. 고작 시험에 떨어지고 있다고 내 삶의 가치를 깎아 내렸었다. 시험에 계속 떨어지며 공부를 할 때는 매번 공부를 하고 있음에도 주변에서는 간섭과 괜한 꾸지람의 목소리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서 책을 들으며 공상만 하고 있는데, 다들 걱정해주고 응원해준다. 나는 회복이라는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서로 다른 처우가 우습다. 사실 나는 이전에 더 아팠다. 지금은 많이 건강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픔마저도 겉으로 보이는 것을 판단하고, 감히 쉴 권리를 부여한다. 마음이 아픈 사람은 감히 쉴 권리도 없다. 사실은 누구보다 더 쉬어야 하는 사람인데 말이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랬다. 넘어졌더니 눈이 깨져서 한 달을 누워있다. 한 달 동안 책만 듣고 매일을 생각만 하고 있으니 신선놀음도 이런 신선놀음이 없다. 넘어진 김에 대자로 누워 내면을 살펴보고 있다.
눈 때문에 시험도 포기하고 쉬고 있고, 앞으로 눈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습게도 지난 몇 년간 이렇게 마음이 편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던 적이 없다.
요즘은 집에 청소를 열심히 하고 있다. 아침과 저녁에는 가게에도 나가 청소를 도와드린다. 부모님께서는 집에서 쉬라고 만류하시지만, 사실 너무 할 게 없어서 청소를 하는 이유가 크다. 그리고 청소기로 더러운 먼지를 빨아드리고 있으면 생각보다 행복하다.
지금까지 하던 공부는 선형적이지 않았다. 공부를 한다고 그만큼 바로 지식이 쌓이는 느낌이 들지도 않았고, 시험 점수는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지기도 했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결과는 언제나 차가운 이진수로 나온다. 0 혹은 1, 그리고 나는 언제나 0을 받았다.
청소기를 사용해 청소를 하면 아무 생각 없이 길을 정해 이리로 저리로 가면서 지나온 자리가 깔끔해지는 것이 보인다. 굳이 멀리 보지 않더라도 내가 지나온 자리가 이전보다 깨끗해진다. 저 청소기에 미래에 대한 막연한 염려와 과거에 대한 뼈아픈 후회가 "휘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물에 사르르 녹아 형태가 없어진다.
당장 행복해서 만끽할 수 있는 행복은 아니다. 그러나 추운 겨울 따듯한 밖에서 뜨거운 몸앞에서 몸을 녹일 때 전해지는 온기처럼 아주 천천히 안도감이 은은히 퍼진다. 나쁘지 않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