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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Apr 14. 2020

두 달 반, 매일 쓰며 배운 글쓰기의 필요 4가지

오늘은 의미가 깊은 날이다. 매일 써왔던 2달 반의 여정이 끝나는 날이다. 첫 한 달은 나와의 약속, 이후 한 달 반 동안은 함께 하는 사람과의 약속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썼다. 매일 쓴다고 돈 받는 것도 아니고, 글을 쓰지 않는 다고 벌금을 내는 것도 아니다. 이게 뭐라고 많이도 스트레스 받아가며 매일매일 글을 썼다. 


나에 대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신뢰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지난 2달 반, 어떤 변화가 있었나 한번 살펴봄이 필요하다. 글도 마침 브런치에 200번째다. 크게 4가지다. 


나를 마주하게 된다. 어렸을 땐 나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게 내 정체성이었고,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점점 주위를 돌아보니 대단한 사람 천지다. 내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많았고, 앞에 "대단한"이 붙여진 내 정체성은 나를 많이 힘들게 만들었다. 내 정체성은 결과로 형성된 정체성이었다. 좋은 성적, 좋은 학교, 좋은 학점. 고등학교 때 까지는 사회와 주변 어른들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화살을 돌릴 수 있다. 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 내가 나를 더욱 거세게 밀어붙였다. 나를 힘들게 하는 대상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였다. 시험 공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결과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 적어도 단기적인 결과는 운의 영역이다. 결과에 쉽게 흔들리는 정체성은 장기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 이러한 것들을 쓰면서 깨닫게 되었다. 무엇에 대해 글을 쓰든, 글을 쓰는 사람은 본인이다. 어쩔 수 없이 본인을 마주하게 된다. 


루틴이 생기고, 루틴은 습관을, 습관은 정체성을 만든다. 매일 쓰는 것은 하루의 리듬감을 만들어 주었다. 리듬감에 몸을 맡기다 보니 습관이 되었다. 몸이 안 좋거나, 갑자기 새로운 변수가 생기거나, 계획한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는 날들이 많았다. 그런 모든 날들의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글쓰기였다. 한번 글을 쓰고 나면 원래의 루틴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습관이 나를 "꾸준한"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서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 글을 쓰는 동료들이 만났다. 아마 글쓰기가 아니었으면 따로 찾지 않았을 것이고, 만나지 못했을 분들이다. 함께 쓰는 행위는 훨씬 큰 책임감을 주고, 외롭지 않게 해 준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다른 분들을 훨씬 더 가깝게 느끼게 해 주었고, 쉽게 응원 받고 응원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글쓰기가 힘들 때면 다른 분들의 글을 읽고 힘을 냈고, 달아주시는 댓글은 다시금 마음을 잡고 글을 마감하게 만들어 주었다. 가끔은 댓글을 통해 실제 생활에서 만나서 느끼는 감동보다 훨씬 큰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출판사에서 답장 온 메일을 처음 받았을 때 떨리던 심장의 박동수는 진동수도 까지 생생하다. 어제 출간 계약서를 작성했다. 2달 반 동안 작성한 글 때문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2달 반 동안 꾸준히 써온 덕분에 자신감을 얻었다. 자신감을 가지고 원고를 투고했고, 계약을 진행하게 되었다.


결과보다 더 기쁜 것은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내가 더 믿음직스러워졌다. 꾸준히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얻었다. 앞으로 며칠은 글을 쓰고 싶은 날에만 쓸 예정이다. 2달 반은 달려 왔으니, 적절한 휴식은 필요하다. 그리고 분명히 새롭게 글 쓰는 사람을 모집한다면, 이번엔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고 찾아갈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꾸준히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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