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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Aug 12. 2020

97점이 꼴찌가 되는 세상

죽어라 노력해서 97점을 받아봤자 나머지가 다 100점을 받으면 꼴찌가 되는 현실이다. 

<마카롱 사 먹는 데 이유 같은 게 어딨어요?> p34

90년대 생에게는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어떤 정서가 있다. 그 정서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 힘든데, 경쟁, 상실감, 막막함 뭐 이런 단어들의 정서다. 


정부에서 취업률은 높아진다고 하는데, 나는 취업이 안된다. 밥 한 끼 사 먹을 돈은 있어 배는 채우지만,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23문제 중에 22문제를 맞혀도 내 주변에서 전부 100점을 맞춰 버리면 나는 패배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공유하는 바로 그런 감정이 있다. 나도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언제나 나보다 잘하는 친구가 있다. 친구가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면 안타까움과 위로를 전해주면서도 그 깊은 안을 살펴보면 '안도'라는 감정이 보인다. 기적적으로 합격한 친구에게는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네 주지만, 그 축하를 건네주고 집에 다시 돌아오면 씁쓸함이 느껴진다. 


어떻게 내가 사랑하는 친구의 탈락에 안도를 하고, 취업에 씁쓸함 느낄 수 있을까. 심지어 내가 너무 나쁜 사람인가 자책감마저 들지만, 그 자책감에 오래 빠질 새도 없이 또 다른 서류를 쓰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한다. 


이런 감정이 너무 힘들어 주변을 돌아보면, 나만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모두가 아프다고 내 아픔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 아픔을 외치기엔 나 혼자 너무 유별나 보인다. 그냥 그런 슬픈 감정을 속으로 삭힐 뿐. 


명확하지도 않고, 흐릿하게 보이는 내 감정을, 명료하게 표현해 줄 때의 희열이 있다. 그 희열을 <마카롱 사 먹는데 이유 같은 게 어딨어요?>를 읽으면서 느꼈다. 


이 책은 사실은 조금 슬픈 책이다. 씁쓸함이 책 기저에 켜켜이 쌓여 있다. 그러나 책은 재밌게 읽힌다. 저자 이묵돌은 우리가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게 읽는 것'을 바란다고 한다. 나는 성공하진 못했던 것 같다. 중간중간 제법 슬픈 구간들이 많았다. 나는 저자의 바람을 실현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내 글을 읽고 이 책을 사서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게 읽는 것'을 성공하길 바란다. 제법 어려운 일이지만, 누군가 한번쯤 도전해 주었으면 한다. 


그래도 적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은 하고 싶다.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모르겠는 90년대 생도, 도대체가 90년대생이 이해가 안 되는 사람도, 읽어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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