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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메이커 Apr 23. 2020

인도! 어둠 속, 낯선 이들의 호의

인도 뉴 델리, 어두운 골목길에서 만난 친구들

  인도 북서부 지역을 여행하기 위해 터미널로 가는 택시를 탔다. 바라나시 여행은 혼자였지만 이번에는 자이살메르 사막에 함께 갔던 H와 동행을 했다. 인도에서는 버스를 탈 때마다 긴장을 해야 한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버스정류장도 있지만 길가에 정차하여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경우가 많다. 예상 시간보다 일찍 출발하였기에 당연히 늦지 않게 버스를 타고 떠날 것이라는 설렘이 가득했다.  


  "야호, 신난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번 주말이 인도의 연휴였다. 


  "(불안한 마음과 함께) 근데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을까요?"

  "갈 수 있을 거야"

  "아... 왠지 못 갈 거 같은데요?"


  차는 막히고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한 마음이 몰려왔다. 그래도 나는 마음속으로 '무조건 갈 수 있다'를 되뇌며 그렇게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 30분이나 늦은 시간에 그것도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길가에 내리게 되었다.


  "아, 망했다. 버스를 놓쳤어."

  "(짜증 가득) 아우, 돈도 날리고 시간도 날리고..."

  "잠깐만! 그래도 혹시... 연착되었을 수 있으니까 주변에 물어보자"


  되지도 않는 언어였지만 단어 몇 개와 손짓 발짓을 써가며 버스 정류장이 어디인지 묻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내가 그동안 듣고 경험했던 인도스러움 그대로 모두가 다른 길과 위치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거의 포기하기 직전, 한 상인에게 다음 모퉁이를 돌아가면 버스정류장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왠지 모르게 아닌 거 같았지만 속는 셈 치고 가보기로 했다. 일단 가서 버스가 출발했는지, 만약 출발했다면 다음 버스는 없는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모퉁이를 돌아 골목에 접어드는 순간 가로등은 하나도 없고 어두컴컴했다. 버스 정류장은커녕 인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약간 무서웠다. 낯선 땅, 낯선 골목에 가로등도 없는 저녁시간. 앞에서 남자 두 명이 걸어온다. 멈칫하는 마음도 잠시,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외쳤다. 


  "Excuse me!"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밝은 표정과 함께 무슨 일이냐고,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오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들이었지만 두려움보다는 무언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 같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출력해온 버스표를 보여주며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마, 우리가 도와줄게. 같이 터미널에 가서 확인해보자."


  우리는 릭샤를 타고 인근에 있는 버스 터미널로 이동을 했다. 그러나 가는 내내 불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특히 인도에서는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인도뿐 아니라 어디서든 외국인 관광객 대상으로 거짓말도 많이 하고 사기도 많이 치기 때문에 낯선 이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들었다. 불안해하는 우리를 보며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계속해서 해주었고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기도 했다.


  "어디서 왔어?"

  "코리아!, 너는?"

  "나는 인도"

  

  아무리 봐도 내가 아는 인도 사람 얼굴이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한국사람이 장난을 치는 거 같았다.


  "진짜?"

  "응, 인도 북서부 지역이 내 고향이야"

  "근데, 내가 길거리에서 봤던 얼굴형이 아닌데?

  "(하하) 인도는 아주 큰 나라야, 지역별로 언어나 생김새도 다른 경우가 많아"


  몇 번을 묻고 물었지만 그는 인도 사람이었다. 신기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도는 약 13억의 사람들이 40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큰 땅 덩어리의 대국이었다. 루왕이 태어난 곳의 사람들은 다들 본인과 비슷한 얼굴이라고 했다. 이렇게 인도는 지역별로 생김새나 언어도 참 달랐다.


  "나 한국 엄청 좋아하는데! 특히, 한국 드라마와 영화 좋아해"

  "정말?"

  "(씩 웃으며) 그럼! 손예진이 나오는 클래식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야"


  그들이 하는 말을 어설프게나마 알아듣는 척 하기는 했지만 너무 답답했다. 그래도 이들 덕분에 인도에 와서 처음으로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 영화를 좋아하는 외국인이 있다니...


  드디어 버스 터미널에 도착. 당연히 내가 릭샤 비용을 지불하려는 순간 루왕이 막아섰다.


  "(웃으며) 괜찮아, 내가 낼게"

  "(당황) 아니, 왜? 우릴 도와주러 이곳까지 온 건데 왜 돈을 내려고 해?"

  "괜찮아, 여긴 인도야, 그리고 우린 친구잖아. 그러니까 내가 낼게"

  "(당황) 응?"


  어리둥절했다. 나는 사람을 잘 안 믿는 편이다. 또한 인도에서는 더욱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고 들었다. 만난 지 10분도 안됐는데 갑자기 친구는 웬 말이며, 이러다가 얼마나 더 큰돈을 뜯어가려는 속셈일까?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그들은 한국사람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빠른 걸음걸이로 걷기 시작했다. 나도 걸음걸이가 빠른 편임에도 이들을 따라가기에 벅찰 정도였다. 그렇게 우리는 버스터미널 내부로 들어갔다. 생긴 것부터 걸음걸이까지 인도스럽지 않은 녀석들. 계속해서 불안 불안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현재로써는 방법이 없었기에 우선은 이들을 믿으며 따라갔다. 여러 창구를 옮겨가며 힌디어로 무언가를 묻던 루왕이 말했다.


  "친구야! 이 버스는 벌써 출발했데..."


  예상은 했지만 허탈함이 몰려온다.


  "진짜?"

  "응. 근데 걱정하지 마! 우리가 다른 버스를 알아볼게!"

  "정말? 다음 버스가 있어? 그럼 부탁할게!"


  갑작스러운 도움에 고마웠지만 한편으로 이들은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건가 싶었다. 돌아서서 루왕과 지투는 뭔가를 이야기하는 거 같더니 우리에게 버스를 예매할 돈을 달라고 했다.


  "너희 얼마 있어?"


  순간 이들이 이 돈을 가지고 도망가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그곳에 너무 가고 싶었다. 만약 이들이 도망가면 죽을힘을 다해 쫓아가겠다는 생각으로 조심스레 돈을 건넸다. 그리고 이들은 질서 없이 무조건 몸을 들이미는 현지인들 사이를 뚫고 창구 직원과 소통하며 다음 버스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여러 창구에서 묻고 또 물었지만 뭔가 시원한 답이 보이지는 않았다. 갑자기 둘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느껴서 그랬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은 버스 티켓 값을 다시 돌려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계속해서 우릴 안심시켰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다음 버스가 있을 거야, 우선 돈 받아"


  10~20분이 지났지만 우리가 예매했던 관광버스는 없었다. 그래서 결국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버스를 예매했다. 이때까지는 현지 버스 상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우선은 버스를 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고 고마웠다. 솔직히 조금 흥분해서 미쳐 날뛸 뻔했다. 어두운 골목에서 처음 만난 한국형 얼굴의 인도인들이 본인들 돈으로 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주고 땀을 뻘뻘 흘리며 우리 버스를 알아봐 준 것. 낯선 땅, 그것도 인도라는 곳에서 의심쩍게 따라가는 우리를 계속해서 안심시켜준 것. 거기다 아무런 보상이나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고 좋은 시간 보내라며 밝게 인사하며 떠난 것. 이게 전부였다. 아직도 잘 믿기지는 않는다. 


  기대했던 여정의 버스를 놓쳤다는 것을 알던 순간 기분이 몹시 안 좋았었다. 그러나 버스를 타지 못하고 이번 여정을 떠나지 못한다 한들 이런 느낌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가슴 찡한 그런 순간이었다. 미리 예매해뒀던 버스를 놓치고 돈도 날렸음에도 바보같이 그저 감사하고 좋았다. 어디 가서 할 수 없는 나만의 특별한 경험이었기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낯선 외국인은 물론이거니와 지나가던 한국인이 나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나의 도움이 필요해 보인다면? 이들이 나에게 보였던 것처럼 시간과 비용을 들여 아무런 대가 없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을까? 그것도 내 주변인들도 아닌 어두운 골목길에서 처음 만난 낯선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설령 무언가 돕는다 한들 그들에게 깊은 울림까지 줄 수 있을까?


  인도에서 만났던 이 친구들을 통해 내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잔잔하면서도 큰 울림을 느꼈던 순간의 기록.





왼쪽부터 나, 지투, 루왕, H



안 보다 바깥이 훨씬 깔끔하고 좋아 보이는 이 버스를 타고 약 10시간 동안, 구불구불 산길을 달렸다.






누군가의 인생에 '울림'을 주는 삶을 꿈꿉니다.

916일 동안 80개 나라를 방황하였고, 조금 다른 인생을 나만의 페이스로 살아가는 중.


- 개인 키워드 : 울림, 가족, 약자, 자신감, 리더십, 영향력, 강점, 세계일주, 퇴사, 도전, 성취, 강연, 동기부여, 공감, 글, 코칭, 관계, 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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